국내트레킹

예봉산-율리봉-예빈산(직녀봉)-견우봉-승원봉 (2014년 2월 15일)

빌레이 2014. 2. 16. 06:49

일주일을 빡빡하게 보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거의 쉬는 시간도 없이 몰입했던 단순한 일과의 연속이었다. 무언가 열심히 일할 때는 제대로 살고 있는 듯한 만족감이 있다. 하지만 몸이 지치는 건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한창 젊었던 시절의 열정만으로 몸을 혹사시킬 수는 없다. 이제는 나이든 몸을 인정하고 적절히 물러설줄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연구실 안에서 갇혀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서울이 아닌 곳의 산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폭설 피해를 입은 강원도의 산을 찾기도 미안한 일이다. 중앙선 전철타고 팔당역으로 가서 예봉산에 올라 조그만 해방감이나마 느껴보기로 한다.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에 팔당역 앞 광장은 등산객들로 시끌벅적이다. 일반 등산객들이 오르는 코스인 팔당2리로 가는 코스를 버리고 반대편의 한적한 등로를 택한다. 팔당역에서 예봉산 정상을 올려다 보았을 때 시계방향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능선을 타는 코스이다. 발목수술 후 재활하던 시절 친구들과 처음으로 산행다운 산행을 했던 루트이기도 하다. 한적한 오솔길을 꾸준히 오르다보면 천마지맥길인 주능선과 만난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산객들이 많아진다. 팔당호에서 마무리되는 천마지맥의 끝자락을 타보기로 한다. 예봉산 정상을 오르는 비탈길에는 잔설이 남아있다. 사람들로 붐비는 정상을 지나쳐 율리봉에 도착하니 어느새 주위는 고요하리만치 조용해진다.

 

율리봉에서 예빈산을 향해 내려가는 중간의 양지바른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한참을 쉬어간다. 두물머리와 팔당호의 차분한 풍광이 있어 더욱 좋다. 율리고개에서 예빈산 정상인 직녀봉을 오르는 비탈길에도 잔설이 남아 있으나 아이젠을 착용할 정도는 아니다. 이 길을 역방향으로 걸어보는 건 처음인데 이맘 때에는 이렇게 걷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내리막 코스가 양지이므로 눈이 완전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철쭉 군락지의 와송도 여전하고 직녀봉과 견우봉이 연이어 나타나는 산길을 걷는 맛도 그만이다. 직녀봉에서 바라보는 팔당대교와 미사리의 풍경이 시원하다. 견우봉에서 한 눈에 조망되는 팔당호와 두물머리의 경치는 하산하려는 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팔당댐에서 흘러나와 검단산과 예봉산 사이를 흘러나가는 한강물은 반짝이는 물비늘을 쉴새없이 반사시켜 봄이 멀지 않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견우봉의 훌륭한 풍광을 마음 속에 담고 싶어 또 한참을 쉬어간다. 아직은 얼음이 절반 정도 덮여있는 드넓은 팔당호가 하산하는 산객들을 맞이한다. 호수의 너른 품에 안길 것 같은 포근함을 느끼며 오솔길을 내려가는 기분이 편안하다. 그렇게 한가롭고 여유로운 마음 속에 승원봉을 거쳐 천주교 공원묘지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 한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도착한 버스를 타고 다시 서울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한강물은 여전히 은하수처럼 반짝이며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다. 도시의 회색빌딩 속에서 갇혀 지냈던 주중의 일상을 충분히 보상받았다는 흡족함이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