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명성산 종주 - 2013년 1월 18일

빌레이 2014. 1. 19. 14:58

신선한 겨울 공기를 폐부 깊숙히 들이마시고 싶은 생각에 새벽길을 달려 포천의 명성산으로 향한다. 아침 8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에 도착한 산정호수 주차장은 한산하다. 비선폭포와 등룡폭포가 있는 계곡길을 따라서 억새평원으로 이어진 등산로에 들어선다. 영하 8도의 기온이지만 그리 춥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빙폭이 되어 있는 등룡폭포 앞의 전망데크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풍경 좋은 산 속 한가운데에 들어앉아 얼음 속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 들으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자니 저절로 신선이 된 기분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르다가 억새평원의 나무벤치에서 두 번째 휴식을 취한다. 억새들 사이에서 외로운 남매처럼 서있는 두 그루의 나무 주위를 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벤치가 쉬어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명성산 억새 축제 기간엔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많은 인파로 붐볐을 이 곳이 너무나 한산해서 언뜻 다른 장소인 듯한 착각마저 든다. 억새평원 중앙을 가르고 있는 등로를 따라 오르며 하늘금 위에 듬성듬성 꽂혀있는 몇 그루의 나목들이 푸른 하늘을 배경삼아 또렷히 빛나고 있는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억새평원에서 삼각봉과 명성산 정상으로 이어진 마루금을 걷는 기분은 상쾌함 그 자체다. 좌측으로는 하얗게 얼어붙은 산정호수가 손바닥만 하게 내려다보이고 우측으로는 각흘산과 한북정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장쾌하다. 나무가 거의 없어서 이국적이기까지 한 능선길은 지난 여름 알프스 산록을 걷던 순간을 되살려준다. 삼각봉(906m)은 그 이름처럼 어느 곳에서 바라보든지 잘 생긴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그 뒤에 형님처럼 버티고 서있는 명성산 정상(923m)은 상대적으로 모나지 않은 봉우리 형상이다. 해태상이 앙증맞게 얹혀져 있는 삼각봉의 정상석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여 상당히 인상적이다. 

 

삼각봉을 내려오자마자 각흘산으로 이어진 갈림길이 나타난다. 광덕고개에서 시작해서 광덕산 정상과 박달봉, 자등현, 각흘산으로 이어진 산줄기를 타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지라 하얗게 빛나는 그 능선을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다시 명성산 정상으로 눈길을 돌려 산행을 이어간다. 정상석에서 기념사진을 남긴 후 양지바른 나무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가을방학의 포근한 노래와 함께 따뜻하고 만족스런 식사를 마치고 궁예봉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우측으로는 철원의 용화저수지가 가까이 보인다. 언젠가는 궁예능선도 걸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궁예봉 갈림길에서 좌측의 산안폭포가 있는 계곡길로 내려간다. 음지가 많고 수맥이 흐르는 골짜기인 까닭에 멋들어진 고드름 군락이 곳곳에 산재한다. 얼어붙은 계곡과 자연스런 고드름들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내려오니 어느새 산안고개에 도착한다.

 

산안고개에서부터 산정호수까지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하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기 때문인지 지루하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다. 얼어붙은 산정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관광객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얼음 낚시, 빙판 위를 달리는 사륜구동 바이크와 트랙터가 끄는 기차 등이 이색적이다. 긴 시간을 조용한 산에서 지내다 마주하는 산정호수 관광지의 소란스러움과 경쾌함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잠시 선계에서 노닐다 속세로 다시 내려왔다는 기분을 떨칠 수는 없다. 그래도 오랜만에 찾은 명성산의 품에 안겨서 맑은 산소 충분히 마시면서 일곱 시간 넘게 머물다 왔다는 것이 대단히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