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에 있는 계방산에 가기 위해 강남의 신사역에서 7시 반에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에 몸을 싣는다. 인파로 붐비는 산길을 가야한다는 것이 불편한 일이지만 하룻만에 강원도 산의 설경을 즐기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계방산은 몇 년 전에 동료 교수들과 평일에 호젓한 산행을 즐긴 곳이긴 하지만 눈 산행지로 명성이 자자한 요즘에 한적한 기분을 느끼며 산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곳이 돼버렸다.남한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1577 미터의 고도를 자랑하는 계방산이지만 천 미터가 넘는 운두령이 산행 출발지이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한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버스는 열시 반경에 운두령에 도착한다. 산악회 버스들이 줄지어 서있는 운두령은 전국에서 몰려온 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미 예상한 일이었기 때문에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곧바로 등로 초입의 넓은 나무계단을 올라선다. 스패치를 착용하고 스틱 길이까지 맞추어 놓는 등 등산에 필요한 잡다한 사전준비를 버스 안에서 마무리 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눈길 능선에 들어서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일렬로 늘어서 있는 산객들의 틈 속에서 차분히 진행한다. 초입부터 내리던 가랑비는 어느새 싸락눈으로 변해 있다. 중간에 한 번의 쉼을 갖고 간식을 먹은 것을 제외하고는 전망대까지 쉬지 않고 오른다.
전망데크가 있는 곳은 평소에 조망이 좋은 곳이지만 흐린 날씨 탓에 사방이 구름 속이다. 그래도 이곳부터 상고대가 이어져 눈산행의 진수를 어느 정도는 만끽할 수 있다. 드넓은 계방산 정상에도 사람들은 만원을 이루고 있다. 정상에서 주차장 방향으로 하산하지 않고 오대산으로 연결되는 한강기맥길을 따라 계속 전진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로 인해 산행의 묘미가 되살아난다. 등로 양쪽에 쌓인 눈의 깊이도 일 미터는 족히 되는 듯하여 비로소 심설산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주목군락지가 있는 곳 이후로의 한강기맥길은 통행금지 구역이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하는 표지판들이 야속하다. 적어도 마루금 산행은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정책적 판단이 아쉽다. 백두대간을 비롯한 정맥과 기맥 종주를 완성한 이들에게 만족감보다는 법을 위반했다는 개운치 못한 기분을 안겨주는 작금의 국립공원관리공단 운영 실태는 분명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생각이다.
주목삼거리에서 자동차야영장으로 하산하는 길에 접어들어 점심을 먹는다. 싸락눈이 계속 내리고 있는 가운데 주목의 아래는 아늑한 쉼터를 제공해준다. 대부분의 활엽수들이 나뭇잎을 떨구어 나목으로 겨울을 나고 있는 가운데 주목의 푸르름과 우아한 자태는 눈이 내리는 날 더욱 더 빛나는 듯하다. 주목의 너른 품 안에서 편하고 따뜻한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한다. 사람들만 많지 않다면 엉덩이로 썰매타고 내려오기에 안성맞춤인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 괜찮다. 평지가 가까워지자 낙엽송 군락이 나타난다. 시원하게 일자로 뻗어있는 낙엽송 숲을 배경삼아 어느새 함박눈처럼 변해 풍성하게 내리는 눈이 나그네의 마음을 더욱 포근하게 해준다. 반공 교육을 상기시켜주는 이승복 생가터를 거쳐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길은 평탄한 도로이지만 자동차가 거의 없으니 산책하는 기분이 절로난다. 버스산악회는 시간이 부족할 때 가끔 이용하면서 항상 후회하곤 했었다. 그래도 이번 산행은 기대보다는 각오를 하고 간 탓인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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