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그리웠던 선생님과 함께 오른 모악산 - 2013년 12월 4일

빌레이 2013. 12. 13. 20:27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이셨던 문인숙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문 선생님으로부터 수학을 배웠다. 그 때 잘 가르쳐주신 덕택에 수학을 어느 정도 잘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수학을 통해 먹고 살고있다는 생각에 선생님은 내 마음 속의 존경스런 은사님으로 자리하고 있다. 내가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갔을 때 문인숙 선생님이 전근 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었다. 그 후로 선생님의 소식을 모르다가 대학시절 다시 만나뵐 수 있었다. 고향집에 내려가 친구들과 같이 찾아간 모교에 문 선생님의 오빠 되시는 문인원 선생님이 계셨었고,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을 다시 뵈었을 당시 나는 대학의 수학과 학생이었기 때문에 공통 부분이 많아 대화가 잘 통했던 것 같다.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갈 때면 종종 광주 시내에서 선생님을 만났었다.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에 아내와 둘이서 선생님을 찾아뵙고 선물까지 받은 기억은 생생하다. 그 후로 어찌 된 사정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선생님과의 연락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새로 꾸린 가정, 갓 태어난 아들, 박사과정 동안의 힘들고 궁핍한 일상,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고뇌 등으로 당시의 내게는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앞만 보고 살던 때라 선생님을 찾아뵐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자연스레 연락도 끊겼었다. 선생님을 그리워 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으나 한 번 끊긴 인연은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21 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러버린 후 최근에야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오빠 되시는 문인원 선생님을 통해서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는데 선생님은 너무나 편안한 목소리로 반갑게 받아주셨다.

 

전주에 살고 계시는 선생님도 등산을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모악산에 함께 오르기로 약속이 되었다. 새벽에 차를 운전하여 9시 반 즈음에 선생님댁 앞에 도착한다. 21 년이 흘렀는데도 어제 뵌 것처럼 친숙하고 편안한 선생님의 모습이 정말 반갑다. 건강해 보이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감사한 마음이다. 내 차에 선생님을 모시고 완주군 구이면의 모악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대원사와 수왕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루트를 따라 산에 오른다. 천천히 걸으며 선생님과 그동안 쌓인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산길을 걷는 것이 더이상 행복할 수 없다. 정상부가 눈길이라 미끄럽고 연무에 쌓인 주변 풍경이 열리지 않아도 산속에 선생님과 함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즐겁다. 내려올 때는 상학능선의 솔숲 사이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른다. 한적한 산길이 걷기에 그만이다. 산을 내려와 전주 한옥마을을 구경하고 선생님이 사주신 맛깔스런 비빔밥까지 먹고나니 더이상 부러울 게 없다. 앞으로 종종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나는 나주 고향집의 어머니께로 향한다. 전주에서 광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보는 석양이 아름답다. 부드럽게 주위를 어루만지는 듯이 서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붉은 기운이 문인숙 선생님의 편안한 인상을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