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처가에서 새벽에 차를 달려 사나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호남고속도로 논산 JC를 지나 대전으로 향하는 도중에 일출을 만난다. 은은한 후광을 받아 선명해진 산줄기의 실루엣이 그 어느 때보다 청아하다. 저멀리 대둔산의 암릉이 빚어내는 하늘금이 눈길을 끈다. 정갈한 한국화 화폭 속의 한 부분을 감상하는 것처럼 마음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여명의 신선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하다. 대전을 지나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한다.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최근 개통된 여주 JC에서 양평까지 이어진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차가 거의 없는 한적한 도로를 거침없이 내달려 아신역 부근의 나들목을 빠져나온다.
용문산과 백운봉 일대의 산줄기는 거의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녔지만 사나사에서 출발하는 루트는 처음이다. 그동안 가봐야할 산행 코스로 나의 뇌리에 숙제처럼 남아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나주의 고향집과 광주의 처가에 다녀오는 길이라 차분히 운전하고 귀경할 예정이었으나, 토요일 등산을 쉬고 싶지 않아 즉흥적으로 결행한 산행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숙제 하나를 처리 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탓이다. 옥천면에서 사나사 골짜기로 진입하면서 바라보는 백운봉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에 비해 매우 뾰족하게 보인다. 이 곳에서 보는 백운봉은 한국의 마터호른이라는 별칭이 터무니 없는 과장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나사의 좌측 능선은 오똑한 봉재산에서 시작된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으로 내려와 리본을 보고 오솔길을 따라 능선에 오른다. 능선부터는 이정표가 심심치 않게 잘 설치되어 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길이 걷기에 정말 좋다. 가끔은 가파른 오르막도 나타나지만 전반적으로 흙길이고 한적한 산중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으니 피곤하지 않다. 설매재 휴양림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부터는 산길이 좀 더 뚜렷해진다. 얼마 가지 않아 한강기맥길로 접어든다. 배너미 고개에서 올라오는 넓은 등로와 만나는 것이다. 본격적인 눈길 산행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눈 앞에 용문산 정상의 사이트 기지가 눈 앞에 펼쳐진다.
시원한 조망과 눈부신 상고대를 즐기면서 사이트 기지 울타리 옆으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장군봉과 가섭봉 갈림길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저 멀리 우람하게 솟아오른 백운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장쾌하다. 자주 걸었던 능선길이라 친숙한 곳이지만 올 때마다 느낌은 새롭다. 눈 쌓인 그 길 위에 다시 한 번 발걸음을 옮긴다. 상원사로 하산하는 산객들이 많은 장군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조금 더 전진하여 사나사로 향하는 하산길로 접어든다. 길은 능선을 따라 얼마 간 이어지다가 골짜기로 내려와 계곡 옆의 오솔길을 따르게 되어 있다. 비록 잎이 떨어진 나목들이지만 원시림 같은 울창함이 느껴진다. 물소리도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계곡은 여름철 피서지로 제격일 것 같다. 동지가 가까워져 해가 짧아진 탓인지 사나사에 도착하자 서서히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6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15 킬로미터 가까이를 걸었다. 조용한 사나사의 앞마당에서 지는 해를 받고 있는 용문산 일대를 올려다본다. 이제는 용문산 주변의 등산로를 아쉬움 없이 밟아 보았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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