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역에서 이른 아침 7시 50분에 발차하는 경춘선 전철에 오른다. 며칠 전 내린 눈과 한파주의보가 계속된 날씨 탓에 전철 창밖으로 보이는 산하는 온통 하얀 빛깔이다. 청평역에서 하차하여 눈길 산행 준비를 한다. 장시간의 눈산행에 대비하여 스패치와 아이젠까지 철저하게 챙긴다.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동내의를 착용했는데 갑갑하지 않고 오히려 잘 입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 한 분이 조종천 징검다리로 내려서는 철계단에 연탄재를 뿌리고 계신다. 산객들의 미끄럼 사고를 방지하려는 할아버지의 그 손길이 고맙게 느껴진다. 많은 눈이 쌓인 산길이고 된비알이라지만 등로 초입을 오르는 게 평소보다 힘겹다. 학기말의 분주한 일상으로 피로가 누적된 한 주간을 보낸 탓이다.
청평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데크에서 잠시 쉬어간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북한강의 수면이 아름답다. 강물을 따라 이어진 하얀 구름은 또 하나의 순백으로 빛나는 산처럼 보인다. 천마산과 축령산 등의 산줄기도 선명하다. 올 때마다 색다른 조망을 선사하는 이 전망데크가 참 좋다. 삼십여 분을 더 올라 호명산 정상에 도착한다. 추운 겨울날의 청명한 하늘 아래 거칠 것 없는 조망이다. 화악산, 명지산, 운악산, 주금산 등의 산봉우리들이 하얀색으로 단장한채 겨울산의 풍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가야할 호명호수의 둑방에 쌓인 하얀 눈이 손에 잡힐듯 가깝다. 심설 산행이 부럽지 않을만큼 많이 쌓인 눈길 위를 걷는 것이 즐겁다. 기차봉을 거쳐 호명호수에 이르는 동안 줄곧 눈발이 날린다. 제법 함박눈 같은 눈이다.
호명호수 주변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주발봉으로 이어진 능선길을 따른다. 오래 전부터 걷고 싶었던 길이다. 그동안은 호명호수에서 상천역으로 하산하는 루트만을 다녔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심찮게 이어지는 오솔길 위에 많은 눈이 쌓여 있으니 걷는 것이 평소보다 힘겹다. 자연스레 진행 속도도 생각보다 느리다. 발전소고개의 팔각정에서 간식을 먹고 에너지를 보충한 후 힘을 내서 걷다보니 주발봉이다. 정상석도 근사하고 전망데크도 잘 설치되어 있다. 가평시내와 자라섬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춘천에서 흘러내려오는 북한강 물줄기의 곡선이 아름답고 남이섬의 일부분도 가까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내리막길인 오솔길을 따라 진행하지만 간간히 나타나는 오르막길이 힘겹게 느껴진다. 참나무 숲길에 낙엽송과 잣나무 숲이 심심찮게 이어지는 풍경은 걷기 산행의 재미를 더해주는 듯하다. 체력이 어느 정도 소진된 까닭에 종착지가 빨리 나타났으면 하고 고대하던 순간 눈 앞에 갑자기 가평역이 보인다. 도상 거리는 약 17 킬로미터로 평소라면 7 시간 정도면 해치웠을 구간인데 8 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었다. 눈이 많이 쌓인 산길은 모래 언덕을 걷는 것처럼 체력 소모가 심한 것 같다. 몸 상태도 좋은 편이 아니었고 두툼한 옷과 장비를 착용한 채 제법 무거운 배낭까지 짊어지고 걸었으니 힘에 겨운 건 당연한 이치다.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닌데도 꿋꿋하게 걷고 싶었던 길을 끝냈다는 것이 더 큰 만족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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