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등반 - 2013년 7월 20일

빌레이 2013. 7. 22. 21:16

어제의 천화대 릿지 등반은 모두들 힘겨워 했다. 피치 사이가 길어 걸어서 이동하는 거리가 많고 길도 잘 못 들어 고생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동창인 경화의 부군 되시는 오선생님의 직장에서 제공한 숙소가 좋아서 간밤에 편안히 잘 수 있었다. 새벽에 기상하니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여 오늘 등반에 나설 힘이 솟는 듯하다. 어젯밤 늦게 경화도 합류하여 다섯 명이 등반에 나선다. 한창 암벽 등반을 배우고 있는 경화 부부에게는 이번이 설악산 등반 첫 나들이인 셈이다.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은 초보자에게 아주 좋은 실전 등반 대상지이다. 하루 전 힘든 등반을 했던 친구들에게는 가볍게 몸을 풀 수 있는 코스로 부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새벽 다섯 시 경에 설악동 매표소를 통과하여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길지 않은 어프로치가 부담 없어 좋다. 하늘은 청명한 가을날처럼 푸르고 맑다. 내가 선등을 맡고 은경이가 세컨, 그 다음으로 경화가 오르고 오선생님이 라스트를 담당한다. 정신이는 사진 촬영을 위해 필요에 따라 적당한 곳에서 등반하도록 한다. 경화 부부에게 루트 전반에 대해 간단히 브리핑하고 즐겁고 안전하게 등반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할 사항을 간단히 부탁한다. 둘째 마디를 올라서니 시야가 트이고 바람도 살랑살랑 부는 것이 여간 즐거운 게 아니다. 경화 부부도 베테랑처럼 여유있게 즐기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많이 다녀본 길이고 비교적 쉬운 길이지만 나와 은경이는 무엇보다 자일파티 모두의 안전에 신경쓰면서 신중하게 등반한다. 토요일인데도 우리 팀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하늘은 높고 대기는 맑아서 꼭 가을날 같이 신선하고 청아한 느낌이다. 다른 팀에 의한 지체 현상이 없으니 오버행 구간이 있는 마지막 세 피치도 짧은 시간에 해치운다. 오전 11시가 못 되어 노적봉 정상에 오른다. 그동안 내린 비로 인해 토왕성 폭포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장관이다. 상폭, 중폭, 하폭을 선명하게 연결한 물줄기가 맑은 하늘 아래에서 깨끗하게 빛난다. 이제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은 올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느껴지는 마음 속의 고향 같은 존재가 된 듯하다. 경화 부부에게는 모든 것이 좋았던 축복 같은 등반이 되었으리란 생각에 내 마음도 더욱 기쁘다.

 

1. 설악산 등반이 처음인 경화 부부가 피너클 지대를 통과하고 있다.

 

2. 익숙하고 비교적 쉬운 길이지만 선등할 때는 무엇보다 본인 뿐만 아니라 자일파티 모두의 안전에 신경쓰면서 올라야 한다.

 

3. 고도감이 상당한 후반부 마디에서도 베테랑처럼 여유있게 등반하는 경화 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다.

 

4. 자일파티 모두가 등반에 집중할 수 있으니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유연하다.

 

5. 세컨을 맡은 은경이는 선등자 빌레이 뿐만 아니라 등반 초심자인 친구 경화도 세심히 챙긴다. 

 

6. 평소 덕을 많이 쌓은 탓인지 경화 부부의 첫 설악산 등반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축복이었다.

 

7. 다섯 명이 자일파티를 이루어 한 몸처럼 조화로운 등반을 즐길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8. 지금까지 보았던 토왕성 폭포의 모습 중 으뜸이었다.

 

9. 환상적인 풍광 때문에 클라이밍 다운 구간으로 들어서는 길도 즐겁다.

 

10. 자일파티 모두의 배려 속에서 어느 때보다 즐겁고 만족스런 등반을 즐겼다. 친구가 찍어준 사진도 으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