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때가 되어서야 인수릿지 등반 계획이 세워졌다. 정신이의 등반 계획을 기다렸으나 처갓집에 가야할 일이 생겼다고 한다. 지난 주 고독길 등반에 합류하실 수 없었던 박교수님께 인수봉 정상에 오를 기회를 마련해드리고 싶었다. 이번에는 유집사님께서 뒤늦게 합류하여 은경이를 포함한 네 명이 자일파티를 이루어 토요일 새벽에 출발하기로 약속하였다. 요새는 새벽에 출발하는 등반이 예정되면 잠을 설치기 일쑤다. 인수릿지길은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아 루트는 익숙하다. 하지만 선등에 대한 부담감은 떨칠 수 없는 것이어서 긴장감은 어쩔 수 없이 찾아든다. 자일파티 구성원 모두가 안전하고 즐겁게 등반하기 위한 시스템도 구상하고 크럭스에서 적절히 캠을 사용하는 것도 이미지 트레이닝 하다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유집사님 차에 네 사람이 동승하여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다섯 시 사십 분 경이다. 곧바로 어프로치를 시작하여 하루재를 지나니 시원한 바람이 분다. 날씨도 가을날처럼 청명하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인수봉이 선명하게 다가선다. 인수봉 북측의 설교벽을 지나 인수릿지 초입에 도착한다. 보름 전에는 수수꽃다리가 만개하여 주위가 온통 꽃향기로 가득찼었다. 이번에는 가는 길에 단아하게 피어있는 산목련꽃이 우리를 반긴다. 아침의 신선함과 여름날의 싱싱함을 모두 간직한 육모정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테라스에 앉아 밤골에서 올라오는 숨은벽 능선과 상장능선 사이의 싱그러운 숲을 바라보며 초콜릿과 사과를 나눠먹고 우리가 가야할 인수릿지를 올려다본다.
첫째 마디는 짧은 길이의 디에드르형 크랙이다. 손발 재밍이 양호하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으나 몸이 풀리지 않은 첫 피치라는 점을 감안하여 중간에 캠 하나를 설치하고 오른다. 언제나처럼 선등자 빌레이는 은경이 몫이다. 내가 오른 다음으로 박교수님, 유집사님, 은경이 순으로 오른다. 둘째 마디는 걷는 구간을 포함해서 바위 날등을 오르는 구간이다. 먼저 나타나는 작은 바위는 서너 명이 앉아 쉴 수 있는 크기다. 바위 전면의 돌기를 두 손으로 잡고 오르면 안정적이다. 추락의 위험이 있는 두번 째 바위는 가능한한 손을 길게 뻗어 날등의 홀드를 잡은 후 돌아서야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선등자가 오르면 바위 정상에 확실한 쌍볼트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후등자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다.
셋째 마디는 낭떨어지로 이루어진 침니를 건너 반대편 바위로 올라서야 하는 구간이다. 은경이와 상의하면서 어떻게 할까 잠깐 망설였으나 자일 두 동을 사용하여 하나는 하강용으로 하고 다른 하나로는 반대편 바위를 오르기로 한다. 지난 번 우리 앞의 호주팀이 등반하던 시스템을 좀 더 안전하게 적용해보기 위하여 선등하는 내가 중간에 건너 뛰어 확보점에 도착한 후 은경이를 먼저 건너오게 한다. 다시 은경이의 빌레이를 받고 내가 반대편 바위의 확보점에 올라 간접빌레이를 준비한다. 은경이는 침니 중간에서 박교수님과 유집사님이 건너는 것을 도와준 후 마지막으로 하강용 자일을 회수하고 라스트로 올라온다. 이렇게 하니 안전하고 자일 회수와 유통도 원활한 것 같다. 같은 구간에서도 일률적인 등반 방식에 얽메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적절하고 창의적인 방법을 구사해보는 것이 등반의 안전성과 재미를 향상시켜 주는 듯하다.
셋째 마디에서 하강할 때는 자일을 바닥의 쌍볼트에 설치한다. 지난 번 등반에서 윗쪽의 확보용 쌍볼트에 설치하는 바람에 자일을 회수할 때 바위틈에 끼어 애 먹었던 우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함이다. 하강을 완료하면 캠핑을 해도 될만한 넓이의 안부가 나타난다. 인수릿지의 하일라이트인 실크랙과 사십 미터 크랙 등반 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여기에서 간식을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하고 짧은 휴식을 취한다. 세째 마디 하강 직전의 확보점에서 바라보는 앞으로의 두 마디는 긴 직벽처럼 보이므로 꽤 위압적이다. 실크랙은 짧지만 힘든 구간이고 그 다음 마디는 고도감이 상당할 것이다. 선등으로 올라야 하는 긴장감이 찾아들지만 요즘 읽고 있는 발터 보나티의 위대한 등반기에서 그가 극복해낸 위험요소에 비하면 이런 것 쯤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넷째 마디인 좌향 실크랙에 붙어본다. 왼발을 재밍한 상태에서 한 발 한 발 확실히 딛고 올라서니 생각보다 밀리지 않아 자신감이 생긴다. 발 홀드가 양호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캠을 박는 동작이 힘들기 때문에 그냥 진행할까 하다가 안전을 위해 중간에 두 개의 캠을 설치한다. 크랙이 끝나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바위턱을 잡고 맨틀링 자세로 올라서야 한다. 무사히 올라서서 확보점에 도착한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지난 번 후등으로 오를 때보다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올랐다는 만족감이 찾아든다. 뒤이어 오르는 박교수님과 유집사님도 살짝 미끌리기는 했어도 비교적 쉽게 돌파하신다. 라스트로 오르는 은경이는 캠과 퀵드로를 회수하면서도 여유있게 올라온다.
다섯째 마디는 홀드가 양호한 사십 미터 크랙 구간이다. 초반부는 바위틈 깊숙히 손을 집어 넣으면 확실한 홀드가 잡히므로 즐겁게 오를 수 있다. 손발 홀드 양호한 삼십 미터 크랙을 오르면 볼트에 슬링이 걸려있는 곳이다. 선등하면서 계속 진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안전을 위하여 마디를 출발할 때 약속한대로 은경이를 이 곳까지 올라오게 한다. 여기에서 은경이의 확보를 받고 알파인 레더를 사용해 볼트에 올라선 후 나머지 구간을 비교적 쉽게 끝낸다. 자일을 고정한 후 은경이가 슈퍼베이직으로 끝까지 오른다. 다음으로 박교수님이 슈퍼베이직을 이용해서 오르시고 배낭에 자일을 메고 계신 유집사님이 마지막으로 은경이의 간접빌레이를 받고 올라오신다. 이 구간에서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면 이 방법이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십 미터 크랙 구간을 올라서면 인수릿지에서 가장 좋은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인수릿지를 출발점부터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구간 이후는 비교적 쉬운 난이도이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왼쪽의 귀바위 오버행을 등반하는 사람의 실루엣을 구경하면서 등반을 이어간다. 정상 직전에서는 처음으로 인수봉에 오르시는 박교수님께서 먼저 오르시도록 한다. 네 사람 모두가 즐겁고 뿌듯한 표정으로 인수봉 정상에 모인다. 언제나처럼 인증 사진을 남기고 도시락을 까먹는다. 한참 쉬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난다. 손정준 선생님의 사모님이다. 뒤이어 손선생님도 오신다. 지난 번 현충일의 인수릿지 등반 때에도 만났었는데 우연치고는 꽤 자주 뵙는다는 생각이 든다.
비교적 일찍 올라왔으니 인수A길로 피치 하강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귀바위 밑으로 하강한다. 하지만 인수A길에 많은 사람들이 붙어 있어서 그곳으로 하강한다는 것은 여의치 않을 것 같다. 방향을 바꿔 고독길 쪽으로 하산할 생각으로 통천문에 내려서니 귀바위 오버행 등반팀이 있다. 통천문을 통해 내려다보니 고독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할 수 없이 다시 등반하여 서면 하강포인트로 가기로 한다. 고독길 말미의 침니구간과 영자크랙을 등반하여 인수봉 정상에 오른다. 하루에 두 번 인수봉 정상에 오른 셈이다.
아무도 없이 한산한 서면 하강포인트에서 60 미터와 45 미터 자일 두 동으로 하강한다. 유집사님과 박교수님은 60 미터를 단번에 한 줄로 하강하고 나와 은경이는 자일 회수를 위해 중간에서 한 번 끊어서 하강한다. 지난 주의 고독길 등반에서 나 혼자 중간에 두 줄 하강한 것이 외로워 보였다며 같이 두 줄로 하강해준 은경이가 고맙게 느껴진다. 우여곡절 끝에 하강을 완료하고 등반을 마무리한다. 박교수님의 첫 인수봉 등정과 나의 인수릿지 첫 선등은 자일파티를 이룬 네 사람 모두가 즐겁고 안전한 등반이 된 듯하여 기분이 좋다. 도선사 주차장을 내려오는 길 중간의 음식점에서 오늘 등반에 대한 소감을 서로 나눈다. 한 줄을 묶고 위험요소를 함께 헤쳐나온 자일파티에게는 무언의 동질감이 흐르기 마련이다. 산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좀 더 깊이 있게 느끼고 싶은 마음에서 암벽등반을 즐긴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인지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은 등반이었다.
1. 실크랙 구간을 선등 중이다. 발 재밍을 확실히 하면 밀리지 않는다.
2. 첫째 마디는 길지 않은 디에드르형 크랙 구간이다.
3. 둘째 마디는 작은 바위를 올라선 후 날등에 붙어야 한다. 고도감이 상당하고 선등자는 추락의 위험이 있는 곳이다.
4. 둘째 마디 날등은 처음에 손을 쭉 뻗어 바위턱을 잡고 올라붙으면 된다.
5. 셋째 마디는 하강 후 침니를 건너야 하는 구간이다.
6. 은경이가 중간에 매달려서 박교수님과 유집사님이 건너는 것을 도와주었다.
7. 중간에서 은경이의 빌레이를 받고 나는 먼저 확보점에 도착하여 후등자 빌레이를 준비한다.
8. 셋째 마디 확보점에서 바라본 넷째와 다섯째 마디. 실크랙과 40 미터 크랙 구간으로 꽤 위압적이다.
9. 셋째 마디에서 하강 할 때는 자일을 바닥쪽의 쌍볼트에 설치해야 회수가 쉽다.
10. 실크랙 직전의 넓은 안부에서 휴식을 취한다.
11. 실크랙을 등반 중인 박교수님. 초급자 답지 않게 암벽 베테랑처럼 잘 오르신다.
12. 다섯째 마디를 선등 중이다. 손을 크랙 깊숙히 넣으면 홀드가 확실하고 군데 군데 확실한 발홀드도 많아 등반이 즐거운 구간이다.
13. 다섯째 마디 위에서는 인수릿지 초반부와 설교벽의 조망이 시원하다.
14. 다섯째 마디 이후는 비교적 쉬운 구간이다. 그래도 방심하지 않고 확실히 확보하면서 등반한다.
15. 박교수님께서 인수봉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을 톱으로 오르신다.
16. 세 사람이 모두 정상에 오른 후 나는 박교수님의 확보 하에 라스트로 오른다.
17. 인수봉 정상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맨발로 휴식을 취한다.
18. 박교수님은 인수봉 정상이 처음이다. 은경이의 촬영으로 사나이 셋이서 인증샷을 남긴다.
19. 고독길 방향으로 하산하려다 귀바위 밑에서 오버행 등반 중인 팀을 만난다.
20. 서면 하강길에서 자일 회수를 위해 중간에서 끊어야 했는데 은경이가 도와주니 한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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