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설악산 몽유도원도 릿지 등반 - 2013년 5월 24일

빌레이 2013. 5. 25. 08:49

한 달 전에 약속된 설악산 등반을 가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선다. 이제 막 바위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박교수님과 유집사님께 처음으로 설악에서의 등반을 맛보여 드리기 위한 계획을 구상했다. 사람이 붐비는 주말의 바윗길에서는 초보 등반가들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언제봐도 경이로운 설악의 풍경을 만끽하면서 호젓하고 평화로운 등반을 초급자들이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한가한 평일 산행이 제격이다. 두 분의 안전을 위해 은경이에게도 휴가내고 합류해줄 것을 부탁했었다. 서로의 직장 사정 때문에 휴가 내기가 마땅치 않아 오래 전부터 이번 등반을 계획한 것이다. 그렇게 네 명이 자일파티를 이루어 내 차에 동승하여 서울을 떠나 설악으로 향한다. 새벽 5시 반에 길음역을 출발하여 8시쯤에 장수대에 도착한다. 

 

이제 막 암벽 등반에 입문하는 두 분에게 알맞는 난이도를 가지면서도 안전에 대한 부담 없이 설악을 느낄 수 있는 루트는 몽유도원도 릿지길이 적절할 것이라 생각했다. 개인장비를 새롭게 구입하신 두 분이 실전에서 그 장비를 체험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이기도 한 이번 등반은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다. 발목 수술 이후 좀처럼 선등에 나서기를 꺼려했던 내게도 이에 대한 중압감을 떨쳐버리고 자유로운 등반을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등반이다. 내가 등산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선등에 나섰던 루트도 몽유도원도 릿지이다. 

 

몽유도원도 릿지길은 안자일렌 구간을 포함하여 전체 8 피치로 구분된다. 최고난이도 5.7급 정도로 비교적 초중급 수준의 바윗길이다. 두 번의 자일 하강 구간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초급자들이 다양한 등반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진행 방향 좌측으로는 한계산성 릿지의 깍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우측으로는 미륵장군봉의 우람한 자태가 시종일관 함께하는 경치가 일품이다. 세 번째 마디의 슬랩 구간은 어렵지 않지만 고도감이 상당하고 그 이후의 두 세 마디는 크랙과 침니 등반 구간에서 올라서는 자세가 약간 미묘한 부분이 있다. 마지막 8 피치에서 짧은 오버행 구간과 실크랙에 캠을 설치하고 트래버스 해서 오르는 부분을 제외하면 특별히 어려운 구간은 별로 없다.

 

올해는 초봄부터 차근 차근 등반의 난이도를 올려가면서 계획성 있는 등반을 해오던 터라 편안한 마음으로 선등에 임할 수 있다. 뒤에서 은경이가 든든히 빌레이 보면서 루트 파인딩도 해주니 선등에 대한 부담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자일파티를 이룬 박교수님과 유집사님도 자연스럽게 등반에 집중하시는 모습을 보이니 안전하고 즐거운 등반이 이어진다. 마지막 피치의 짧은 오버행 구간에서 길이 애매하여 좌우로 오간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동료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으면서 캠으로 확보하고 피치 중간에서 안정적인 루트를 찾아가는 과정이 조화로운 등반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이다. 선등자에게 추락의 부담감을 주는 마지막 트래버스 구간에서 남아있는 캠을 충분히 활용하여 이중으로 확보점을 만든 것도 심리적 안정감을 갖기에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비교적 편안하고 안전한 릿지길 등반을 마치고 석황사골로 하산하여 맑은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너럭바위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

 

오후 두 시쯤에 릿지길 등반이 끝난 후 미륵장군봉 슬랩에서 연습등반을 이어간다. 어차피 일찍 서울로 돌아가봐야 퇴근길 정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 어렵게 행차한 설악에 좀 더 머물면서 놀다 가기로 한다. 새로 구입한 암벽화를 처음으로 신고 슬랩을 오르내리는 박교수님과 유집사님께도 유익한 연습등반이다. 서쪽으로 기울고 있는 해가 몽유도원도 바위 병풍을 시원한 그늘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미륵장군봉 첫째 마디에서 행한 슬랩 오르내리기가 더욱 즐겁다. 때이른 여름 날씨를 보인 무더운 날이었지만 설악엔 시원한 바람이 있었다. 온 몸이 정화되는 듯한 그 신선한 바람처럼 기분 좋은 등반을 마음 맞는 지인들과 즐겼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1. 릿지길 등반을 마친 후 미륵장군봉 슬랩에서 연습등반 중인 박교수님. 

 

2. 몽유도원도 릿지길 라스트 피치 위에서 풍경을 감상 중인 유집사님.

 

3. 릿지길 우측으로는 천길 낭떨어지. 절벽 사이를 흐르는 계곡은 석황사골이다.

 

4. 릿지길 등반을 무사히 마친 일행이 등반 종료 지점에서 쉬고 있다.

 

5. 몽유도원도 릿지길에서는 미륵장군봉의 다양한 자태를 시종일관 느낄 수 있다.

 

6. 몽유도원도 릿지길 중간에서 진행 방향을 올려다본다. 좌측의 붉은봉이 시루떡바위. 

 

7. 릿지길 좌측엔 한계산성 릿지의 깍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8. 시루떡바위와 한계산성 절벽의 아름다움을 다같이 느낄 수 있다.

 

9. 등반 중 쉬면서 뒤를 돌아보면 가리봉과 주걱봉을 잇는 산줄기가 멋지게 펼쳐진다.

 

10. 등반 종료 지점에서 우리가 등반한 몽유도원도 릿지길 전체를 굽어본다.

 

11. 설악에서의 첫 등반에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시는 박교님과 유집사님.

 

12. 석황사골에서 올려다본 미륵장군봉은 또다른 얼굴이다.

 

13. 오후의 석황사골엔 그늘이 일찍 드리운다. 우측의 몽유도원도 릿지의 실루엣이 멋지다.

 

14. 석황사골 바위틈에 자리잡은 둥굴레가 가녀린 꽃을 피웠다.

 

15. 시원한 석황사골 계곡엔 아직까지 신록의 봄빛이 남아있는 듯.

 

16. 선등할 때 특별히 유용한 페츨 버그 어택용 배낭이 있어 등반에 대한 자신감이 더해지는 듯하다.

 

17. 새로 산 암벽화 때문에 발가락이 아프다면서도 잘 오르시는 유집사님.

 

18.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 시간 넘게 설악의 품에 안겨 기분 좋은 등반을 즐긴 것에 감사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