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습니다. 몸살 기운에 자꾸만 처지는 심신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입시 관계로 계절학기의 강의가 없었습니다. 집안에서 뒹굴면서 두 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Before sunrise>와 <천년학>을 보았습니다. 모두 아주 단순한 스토리입니다.
영화의 단순성에서 두 편은 묘한 동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천년학>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습니다.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 이청준 원작의 영화 <천년학>은 <서편제>의 후속편 같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서편제>보다는 훨씬 멋진 영상미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국적 한이 서린 정서를 시종일관 품고 있는 화면이 좋습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예인들의 합작품이니 작품성은 두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컴퓨터 그래픽이 아주 자연스럽게 적용되어 표현된 산하의 모습은 신구의 조화가 잘 된 걸작으로 꼽힐만 합니다.
<천년학>을 보는 내내 저의 뇌리를 맴돌던 생각은 단순한 것들의 아름다움입니다.
판소리는 명창 한 사람의 목소리와 고수 한 사람의 북장단만으로 이루어진 아주 단순한 형식의 공연입니다.
오페라 극장의 완벽한 음향 시설 속에서 수십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멋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네 한옥 마당에 멍석 깔아 놓고 동네 사람들 둘러 앉은 속에서의 판소리 공연이 진짜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술이란 것도 사람의 놀이입니다. 그 놀이가 모두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우리네 어른들은 판소리 한 대목을 공유하면서 함께 숨소리 죽이며 들을 수 있는 공감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장님이 된 송화가 당대의 명창에게 비판을 받으면서 자신의 소리를 돌아보는 것은 참 멋진 장면입니다.
송화를 사랑하는 동호는 명창의 비판은 비판일 뿐이며 송화의 소리는 새로운 창조라는 요지의 말로 격려해주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배고프고 힘들었던 칠팔십년대의 이야기와 남도의 배경이 저에겐 진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를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에겐 참 귀중한 것들이 많았다는 것과 그 것들을 너무 쉽게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몬 후유지의 <불씨> (0) | 2009.05.28 |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0) | 2009.05.28 |
알프스와 임덕용 (0) | 2009.05.28 |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0) | 2009.05.28 |
김장호의 알파인 에세이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0) | 2009.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