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빌레이 2009. 5. 28. 16:35

며칠 전에 우리 가족은 조조할인으로 아리랑시네센터에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영화를 보았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여자핸드볼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올림픽 메달에 대한 설레임이 사라진지 오래되었지만 그날의 그 경기는 정말로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가 개봉 되기만을 기다렸다가 짬을 내서 가족 모두가 보러 갔던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감동을 받기 힘든 나이가 된 것이 좀 서글프기는 하다.

젊은 시절엔 스포츠 기자나 스포츠 해설가를 가장 부러워했을 정도로 스포츠를 좋아 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호들갑 떠는 열정은 사라져버렸다.

요즘 한창 야구에 열을 올리고 있는 아들 녀석을 보면 내 어릴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신기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2004년 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은 스포츠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 시기임에도 나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경기다.

 

승부에서 졌는데도 전혀 아쉬움이 없었던 경기를 실제로 본 것은 아마 그 경기가 처음이지 싶다.

우리 여자핸드볼 대표팀은 유럽의 강호 프랑스를 한 점 차이 극적인 역전승으로 따돌리고 힘겹게 결승에 진출한다.

결승 상대는 최강팀 덴마크로 핸드볼의 종주국이다. 덴마크는 근대 핸드볼의 창시자인 닐센의 조국인 것이다.

결승전 경기는 정말 믿기 힘든 승부였다. 

극적인 동점으로 끝난 전후반 정규 시간 이후에도 두 번의 연장전이 모두 동점으로 끝난다.

 

양팔 저울이 정확한 수평을 이룬 것 같이 두 팀의 실력은 팽팽하고 대등했던 것이다. 

마지막 승부던지기에서 메달 색깔은 우리에게 은색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두 팀 선수 모두에게 두 개씩의 금메달을 걸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훌륭한 경기였다.

이 스토리의 감동과 재미를 영화는 온전히 담아냈다. 영화보는 동안 눈물을 서너번 훔칠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대표 선수 중에서 임오경, 오성옥, 이상은, 이 세 명의 선수는 아줌마였고,

올림픽 때면 늘상 들어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다.

이들의 역할을 영화배우 김정은, 문소리, 김지영이 훌륭하게 연기했다.

이들은 영화 촬영을 하는 동안 실제 선수와 다름 없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한국 영화의 희망을 보는 대목이다. 

여배우로서 문소리를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 만큼은 그녀의 연기가 훌륭하다.

 

올림픽이 끝나면 실업자 신세가 되기 쉬운 진정한 아마추어팀이 여자핸드볼 국대이다.

그래서 그녀들의 경기는 항상 싱싱하고 살아있으며, 경기하는 그 순간과 뛰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문소리가 마지막 승부던지기를 하고 모든 소리가 죽은 순간에 아웃오브포커스로

덴마크 선수의 환호가 희미하게 비치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명장면일 것이다. 

 

임영철 감독은 2004년에 이어 올해에도 국대 감독이다. 영화가 끝나고 그의 인터뷰 장면이 실렸다.

결승에서 진 것보다 한국의 핸드볼 환경 때문에 흘리는 그의 눈물이 잊혀지지 않는다.

자신보다는 선수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배려가 깃든 눈물이다.

2008년 북경 올림픽에서는 그의 눈에 기쁨과 환희의 눈물이 흘러내리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