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고도 천 미터 근방의 산봉우리가 연결된 한북정맥은 언제든 오르고 싶은 산줄기로 내 마음 속에 새겨져 있다. 산봉우리들을 이어가는 마루금 산행을 즐기고 있는 요즘에도 한북정맥의 산길은 여전히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날이 풀리면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그간 미루고 있었는데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한북정맥으로 향한다. 북한강과 남한강 주변의 산길을 걷다보니 좀 더 깊은 산중에 안기고 싶은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한북정맥을 시작 구간부터 차례로 타는 것이 여러 가지로 의미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정맥길을 잇는 것보다는 가고 싶은 구간을 골라 타보는 것이 내가 산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이란 생각이다. 한북정맥의 여러 구간들 중 광덕고개에서 국망봉에 이르는 구간은 제일 먼저 걷고 싶은 곳이었다. 백운산 들머리인 흥룡사에서 원점회귀 산행으로 다녀올 수 있는 백운산 정상, 삼각봉, 도마치봉은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국망봉 정상 능선과 신로봉도 자주 다녔던 곳이다. 그래서 익숙한 곳이지만 이들 봉우리들을 이어서 타는 마루금 산행은 또다른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 같은 생각에 그동안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에 집을 나와 동서울터미널에서 7시 30분에 출발하는 사창리행 직행버스에 몸을 싣는다. 봄바람이 아직 쌀쌀하지만 청명한 하늘과 맑은 공기가 기분을 가볍게 한다. 봄나들이 차량 행렬로 붐비던 47번 국도는 광릉내를 지나자 숨통이 트인다. 편안한 우등고속 등급의 버스는 군인들이 많은 포천 일동면과 이동면에서 정차한 후 광덕고개에 우리 일행을 내려준다. 광덕산 산행의 출발지인 광덕고개는 경기도 포천시와 강원도 철원군의 경계이기도 하다.
광덕고개의 휴게소를 가로질러 철사다리를 오르면 백운산으로 향하는 한북정맥길이다. 고도가 높은 탓인지 능선엔 아직도 제법 많은 눈이 남아있다. 첩첩산중의 산속을 걷는 맛이 새롭다. 간만에 산행다운 산행을 하는 것 같은 만족스런 기분이다. 길을 가다 오르막이 끝나는 곳에서 둘러보는 주위 풍광은 시원하기 그지없다. 백운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아직 녹지 않은 눈과 얼어 있는 지표면 때문에 진행하기가 수월치 않다. 백운산 정상에 도착하니 비로소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백운산 아래 흥룡사에서 올라온 산객들이 대부분이다.
백운산 정상을 내려서는 비탈은 양지 바른 곳이다. 도마치봉 가는 길 중간에 복수초 군락을 만난다. 노란 복수초꽃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근처의 눈을 퍼와서 꽃 주위에 뿌려본다. 제법 눈 속에 꽃을 피운 복수초 분위기를 연출해내니 폰카로 몇 장 담아본다. 몇 년 전 연달래가 한창이던 때 노란 피나물꽃 군락과 희귀한 백작약 꽃을 만났던 곳이 근처였던 것 같다. 삼각봉과 도마치봉을 지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안부에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 장소를 조금 지나니 약수터 같은 옹달샘이 있다. 비박하던 사람들에게 자주 듣던 바로 그 도마샘이란 곳이다. 도마치봉 다음은 도마봉이다.
백운산, 삼각봉, 도마치봉 정상은 밟아보았는데 도마봉은 처음이다. 도마봉에서의 조망은 장쾌하다. 석룡산을 지나 경기 제일봉인 화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선명하고 가야할 국망봉과 우측의 가리산도 선명하게 잘 보인다. 지나온 도마치봉과 포천시 백운계곡 방향으로 뻗어내린 암릉 또한 멋지게 굽어볼 수 있다. 도마봉에서 국망봉의 초입격인 신로령에 이르는 길은 상당히 힘겹게 느껴진다. 신로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지만 된비알로 이루어진 오르막은 쉽게 거리를 좁혀주지 않는다.
어렵사리 다다른 신로령에서 장암저수지 방향으로 하산할 것을 결정한다. 무리를 한다면 국망봉 정상을 지나 사격장 능선으로 하산할 수도 있지만 절제하기로 한다. 비탈에 내려서자마자 복수초 군락이 다시 한 번 우리를 반긴다. 계곡 중간에 내려오니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드디어 겨우내 얼어붙은 골짜기에 생기가 넘치는 느낌이다. 우측에서 뻗어내린 작은 골과의 합수지점에 자리한 너럭바위에서 탁족을 한다. 장시간의 행군에 피로해진 발을 계곡물에 담가본다. 발바닥에 얼음 찜질을 하는 것 같이 차가운 계곡물 때문에 몇 초를 견디지 못 한다. 주위엔 버들강아지도 있고 양지바른 곳엔 개구리알도 풍성하다. 진창길에 지저분해진 등산화와 스틱을 세척하고 간식도 먹는다.
계곡에서의 편안한 휴식을 뒤로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등산로 끝지점에 자리한 장암저수지의 맑은 물빛은 봄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산을 벗어나 마을길을 30분 정도 걸으니 이동면사무소에 이른다. 면사무소를 끼고 우회전하여 원조이동갈비촌을 지나면 버스정류장이다. 십 분 정도 기다리니 5시 30분에 동서울로 향하는 직행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다. 여덟 시간이 조금 넘는 강행군이었지만 뿌듯한 마음이 넘쳐 그리 힘겹지 않게 느껴진다. 종주 산행에 뒤따르는 교통편의 불편함도 거의 없는 아주 좋은 산행코스를 발견했다는 기쁨도 크다.
1. 광덕고개에서 백운산 가는 길 중간에 뒤돌아본 풍경... 광덕산 정상부의 기상관측소와 고갯길이 선명하다..
2. 산행의 출발점인 광덕고개... 경기도 포천시와 강원도 철원군의 경계 지점..
3. 능선길 위의 이정표는 너무 빈번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하다... 백운산 정상의 이정표..
4. 백운산 정상석... 이 곳에 서본지도 벌써 삼 년은 지난 것 같다..
5. 백운산 정상을 지난 길가에서 만난 복수초 군락... 한적한 고산에서 보는 들꽃은 특별하다..
6. 백운산 정상을 지나면 다음 봉우리는 삼각봉이다..
7. 다른 산에서는 드물게 볼 수 있는 물푸레 나무가 지천이다..
8. 도마치봉의 정상석도 오랜만에 본다... 글자의 폰트가 산에는 잘 안 어울린다는 생각..
9. 도마치봉을 지나 도마봉 방향으로 내려서면 만나는 도마샘... 어느 산악회에서 증정한 바가지의 글씨가 예쁘다..
10. 도마봉엔 처음이다..
11. 도마봉을 지나 바라본 풍경... 왼쪽이 국망봉, 그 오른쪽 작은 봉우리 두 개 사이가 신로령, 그리고 맨 오른쪽 능선 너머 뾰족봉이 가리산..
12. 도마봉에서 보는 경치는 시원하다... 우측의 석룡산으로 이어지는 산길과 좌측의 화악산이 선명하다..
13. 처음 올라본 도마봉이기에 어색하지만 친구에게 부탁해 인증샷을 남겨본다..
14. 방화선이란 이유로 능선엔 벌목이 되어있다... 길은 시원하지만 곳곳에 눈이 남아 있고 진창길이어서 생각보다 힘겨웠다..
15. 신로령에서 올려다본 신로봉... 예전에 신로봉을 올라 그 뒤 능선으로 진행하다 길을 잃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16. 한북정맥길 이정표는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잘 설치되어 있는 듯하다..
17. 신로령의 이정표... 장암리 방향으로 하산한다..
18. 계곡을 거의 다 내려오면 우측에서 내려오는 작은 계곡과의 합수 지점에 너럭바위가 있다..
19. 진창길이 많은 봄철 산행엔 아무래도 목이 긴 중등산화가 제격이다..
20. 국망봉 정상부엔 아직 흰눈이... 그래도 계곡물은 봄을 알리며 시원하게 흐른다..
21. 산길을 벗어나기 직전에 만나는 장암저수지... 물빛이 청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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