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군포시 수리산의 매바위 암장에서 중요한 볼일을 보던 중 기범씨는 관악산의 자운암장이 별안간 뇌리에 꽂혔다고 했다. 그 순간 몸 속의 찌꺼기와 함께 다음 날 등반지에 대한 고민까지 말끔히 사라져 개운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애초의 계획은 강촌의 패밀리 암장이었는데, 나도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 않았던 터라 자운암장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새로운 암장에 간다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결정된 연휴 세 번째 등반지인 관악산의 자운암장은 서울대학교 교정에서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경전철 신림선 관악산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캠퍼스를 통과하는 동안 오래 전 대전의 국책연구소에 취업하기 직전 서울대학교에서 1년 계약직의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젊은 날의 추억이 떠올랐다.
유전공학연구소 정류장에서 내려 지진관측소 옆으로 나있는 산길을 따라 25분 정도를 오르니 암장이 나타났다. 자운암장의 첫 인상은 모든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빌레이 사이트는 평탄화 작업이 잘 되어 있어서 안전했고, 베이스 캠프 또한 정갈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암장 개척자들의 애정 어린 손길이 곳곳에서 스며들어 있었다. 등반을 하다가 루트 중간의 테라스에서 고개를 돌려 바라본 조망 또한 으뜸이었다. 서울 시내 뿐만 아니라 북한산과 도봉산의 봉우리까지 한눈에 마주 보이는 시원한 풍경이었다. 자운암장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햇볕이 오후에나 암장을 비춘다는 것이어서 여름날 다시 찾아 온다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범씨와 동갑인 인현씨가 처음으로 합류하여 4명이 함께 등반했다. 우리는 '까꿍(5.10a)', '하이캄(5.9)', '너랑나랑(5.10a)', '대암(5.10a)', '동행1(5.10c)', '동행2(5.10d)', '야생화(5.10b)', '광수생각(5.10b)' 루트를 올랐다. 전체적으로 다양하고 특색 있는 동작들을 요구해서 루트마다 오르는 재미가 남달랐다. 우리팀이 한창 등반하고 있을 때, 서울대학교의 외국인 교환학생들 예닐곱 명이 암장에 합류했다. 다양한 국적의 젊은 학생들이 클라이밍으로 하나 되어 자연 속에서 즐기는 명랑한 그 모습이 더없이 활기차 보였다. 젊음의 밝은 에너지로 자운암장 전체의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 올려주는 듯했다. 뒷풀이 메뉴는 서울대입구역에서 먹은 보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