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경기도 남부의 암장들이 궁금했었다. 관악산과 삼성산 등지에 흩어져 있는 암장들 중에서 숨은암장을 먼저 가보기로 마음 먹고 몇 주 전에 등반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당일에 비가 내리는 바람에 결행하지는 못하고, 추후에 적당한 기회를 봐서 숨은암장에 다녀오겠다는 마음만 품고 있었다. 오늘은 처서가 지나고 본격적인 가을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어 산에 가기 더 없이 좋은 날씨 속에 맞이한 주말이기에 북한산과 도봉산의 바윗길이 붐빌 것은 뻔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자가격리에서 해제된 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체력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이번 주말의 등반지는 몸상태 점검과 기분전환을 동시에 해보자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한산할 것을 기대하면서 삼성산의 숨은암장으로 결정했다.
안양의 삼성산은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경기의 남부 지역에 속한지라 주말의 교통 혼잡을 예상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전철과 152번 버스를 타고 경인교대 후문에서 하차하여 삼막사 입구를 통하여 숨은암장에 접근했다. 어프로치 중간에 잠시 길을 헤매고 오금 통증이 재발하여 좀 힘들었지만 암장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엊그제 이틀 동안 침 치료를 받았던 무릎의 통증이 지속된다면 등반을 포기하고 도중에 하산할 생각이었으나, 키네지올로지 테이프를 붙인 후 등반 중에는 신기하게도 통증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등반 장비가 들어 있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길을 오르는 게 무릎 관절에 큰 부담을 주지만, 정작 암벽등반 중에는 걸을 때와는 달리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하기 때문에 하중이 분산되어 무릎이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가을의 쾌청한 날씨 속에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많은 클라이머들로 아담한 숨은암장이 시끌벅적 했다. 자일을 걸어 놓고 톱로핑으로 등반하는 사람들에게 아래에서 훈수를 두는 요란한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루트들을 하나 하나 등반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등반 열정이 불타오르는 몸상태는 아니어서 중앙벽 좌우에 있는 멀티피치 루트를 오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암장 위로 이어진 피치들에는 우리팀 외에 등반하는 이들이 아무도 없어서 비로소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연 속에 안겼다는 해방감이 찾아왔다. 숨은암장의 유명한 루트들보다는 오전과 오후에 등반한 4 피치의 바윗길 두 개에서 뜻밖의 기분전환을 만끽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