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삼성산 숨은암장 - 2022년 8월 27일(토)

빌레이 2022. 8. 28. 19:00

평소에 경기도 남부의 암장들이 궁금했었다. 관악산과 삼성산 등지에 흩어져 있는 암장들 중에서 숨은암장을 먼저 가보기로 마음 먹고 몇 주 전에 등반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당일에 비가 내리는 바람에 결행하지는 못하고, 추후에 적당한 기회를 봐서 숨은암장에 다녀오겠다는 마음만 품고 있었다. 오늘은 처서가 지나고 본격적인 가을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어 산에 가기 더 없이 좋은 날씨 속에 맞이한 주말이기에 북한산과 도봉산의 바윗길이 붐빌 것은 뻔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자가격리에서 해제된 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체력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이번 주말의 등반지는 몸상태 점검과 기분전환을 동시에 해보자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한산할 것을 기대하면서 삼성산의 숨은암장으로 결정했다.

 

안양의 삼성산은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경기의 남부 지역에 속한지라 주말의 교통 혼잡을 예상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전철과 152번 버스를 타고 경인교대 후문에서 하차하여 삼막사 입구를 통하여 숨은암장에 접근했다. 어프로치 중간에 잠시 길을 헤매고 오금 통증이 재발하여 좀 힘들었지만 암장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엊그제 이틀 동안 침 치료를 받았던 무릎의 통증이 지속된다면 등반을 포기하고 도중에 하산할 생각이었으나, 키네지올로지 테이프를 붙인 후 등반 중에는 신기하게도 통증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등반 장비가 들어 있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길을 오르는 게 무릎 관절에 큰 부담을 주지만, 정작 암벽등반 중에는 걸을 때와는 달리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하기 때문에 하중이 분산되어 무릎이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가을의 쾌청한 날씨 속에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많은 클라이머들로 아담한 숨은암장이 시끌벅적 했다. 자일을 걸어 놓고 톱로핑으로 등반하는 사람들에게 아래에서 훈수를 두는 요란한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루트들을 하나 하나 등반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등반 열정이 불타오르는 몸상태는 아니어서 중앙벽 좌우에 있는 멀티피치 루트를 오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암장 위로 이어진 피치들에는 우리팀 외에 등반하는 이들이 아무도 없어서 비로소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연 속에 안겼다는 해방감이 찾아왔다. 숨은암장의 유명한 루트들보다는 오전과 오후에 등반한 4 피치의 바윗길 두 개에서 뜻밖의 기분전환을 만끽했던 하루였다.          

 

▲ 경인교대 정문에서 삼막사주차장 주차차단기를 통과하면 나오는 이 지점에서 가드레일 좌측 계곡으로 내려가는 산길이 숨은암장 접근로의 시작점이다.
▲ 가능하면 넓은 산길로만 이동해서 작은 계곡 두 개를 건넌 후 두 번째 계곡을 따라 오르는 확실한 등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큰 바위에 검은 색 화살표와 '암벽'이라고 쓰인 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조금만 오르면 숨은암장이 나온다.
▲ 숨은암장은 인수봉의 축소판 같은 화강암 덩어리다. 중앙벽 2번 루트인 '소보랑(5.10b)'부터 올라 보았다.
▲ 중앙벽에서는 조용히 등반하기가 어렵겠다 싶어서 1번 루트인 '나들이(4P 릿지, 5.10a)'길을 등반하기로 했다.
▲ '나들이'길 1피치를 오르고 있다. 예상보다 재미가 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 '나들이'길 1피치 확보점에 오르니 시야가 열리고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찾아 들었다.
▲ 등반 중에는 우려했던 무릎 통증도 사라져서 여유가 생겼다. 어프로치 시작 지점인 삼막사주차장도 내려다 보였다.
▲ 숨은암장 상단을 올라오면 만나게 되는 정면 바위에 흰색 페인트로 다음 피치를 안내한 이정표가 나온다. 바위 좌측으로는 중앙벽 1번 루트인 '나들이'길 2, 3, 4 피치가 이어지고, 우측으로 가면 14번 루트인 '봄바람'길 3, 4 피치가 나온다. 처음엔 이 표시를 이해하지 못하여 우측의 "2P" 표시만 보고 우측으로 진행하여 결과적으로는 나들이길 1P와 봄바람길 3P, 4P를 마무리하고 하강한 셈이 되었다.
▲ '봄바람'길 3P를 출발하고 있다.
▲ '봄바람'길 3P는 오버행 구간도 있어서 등반이 즐거웠다.
▲ '봄바람'길 3P는 멀티피치 등반의 묘미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봄바람'길 4P는 짧게 이어진다.
▲ '봄바람'과 '나들이'길 4P 확보점은 동일하다.
▲ 4P 정상에서는 삼성산 정상의 철탑이 마주 보인다.
▲ 4P 정상에서는 좌측으로 관악산 정상부도 또렷히 보인다.
▲ 60미터 자일 한 동으로 '봄바람'길 3P와 4P를 30미터로 이어서 단 번에 하강할 수 있다.
▲ '나들이'길 1P로 하강하여 오전 등반을 마쳤다.
▲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잠시 피해서 쉬는 동안 숨은암장의 루트들을 살펴 보았다.
▲ 중앙벽에는 14개의 루트가 개척되어 있는데, 인수봉이나 선인봉 등반을 준비하기에 더없이 좋은 루트들로 보였다.
▲ 좌벽과 우벽은 상대적으로 너무 낮아서 붙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중앙벽의 루트들은 대부분 사선으로 진행한다는 게 조금은 아쉬웠다.
▲ 중앙벽의 12번 루트인 '영보의 전설(5.10a)'을 오르고 있다. 오버행으로 시작해서 상단부의 세로 크랙이 크럭스인 루트로 짧지만 강한 루트였다.
▲ 그늘진 중앙벽 13번 루트인 '하늘아(5.10b)'는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크럭스 구간을 돌파하지 못했다. 표기된 난이도에 비해 상당히 어렵게 느껴졌다.
▲ 암벽 전체에 그늘이 드리워진 오후 3시 반 경부터는 숨은암장 전체가 시장처럼 소란스러웠다. 피신하는 심정으로 예정에 없던 멀티피치 등반을 다시 하기로 했다. 14번 루트인 '봄바람'길 1P를 오르고 있다.
▲ '봄바람'길은 좌측의 '나들이'길과 달리 두 피치를 등반해야 숨은암장 상단에 닿는다.
▲ '봄바람'길 2피치 확보점이다.
▲ '봄바람'길 3P와 4P는 오전에 올랐으니 이번엔 '나들이'길 2P부터 등반하기로 한다.
▲ '나들이'길 2P 확보점이다.
▲ '나들이'길 2P 확보점에서 뜀바위를 건너면 3P 출발점이 나온다.
▲ '나들이'길 3P는 제법 짭짤한 슬랩이어서 긴장감이 들었다.
▲ '나들이'길 3P는 우측의 칸테 방향에 볼트 흔적이 있었다. 슬랩 등반이 오랜만이어서 상당히 긴장해야 했던 구간이다.
▲ '나들이'길 4P는 짧고 쉽게 진행하여 우측에서 올라오는 '봄바람'길과 확보점을 공유한다.
▲ '나들이'길 4P 등반라인이다.
▲ 우리팀이 하강을 완료한 5시 반 즈음엔 그 많던 클라이머들이 모두 떠나고 난 후였다.
▲ 하산 하던 중간에 암벽화에 시달린 발을 계곡에서 탁족하는 시간이 아주 즐거웠다.
▲ 오염원이 없는 암반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좋아서 한참을 쉬었다.
▲ 삼막사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14분이다.
▲ 숨은암장의 루트들은 표기된 난이도보다 한두 등급은 어렵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