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봉에서 고전적인 바윗길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인수B'길을 올랐다. 바람은 시원했으나 한낮의 태양빛은 여전히 뜨거웠다. 근 10년 만에 올라본 '인수B'길은 생소했다. 첫 피치는 '크로니'길 출발점에서 크랙으로 40여 미터를 올랐다. 둘째 피치는 '인수B'길의 좌측 루트인 '아미동'길과 우측 루트인 '생공사'길이 모이는 확보점까지 50미터 정도를 올랐다. 쌍볼트 확보점 직전에서 방심하다가 미끄러졌지만 리볼팅 이후 새롭게 설치된 볼트가 있어서 긴 추락을 면할 수 있었다. 다행히 부상도 없었다. 여기까지는 작년에 몇 번 올라서 그런지 익숙했다. 일명 항아리 크랙이라 부르는 셋째 피치는 예상보다 힘들었다. 예전엔 크랙 중간에 죽은 나무의 쐐기가 있어서 초반이 쉬웠는데 이제는 만만치 않은 구간이 되었다. 길게 이어지는 크랙에서 캠으로 중간 확보점을 구축하고 손과 발을 째밍하면서 오르는 것에 인내력이 필요했다. 그래도 3피치를 완료하고 나니 트래드 클라이밍을 제대로 경험했다는 뿌듯함이 차올랐다.
넷째 피치도 넓은 크랙으로 시작한다. 가로로 이어지는 밴드를 만나서 좌측으로 트래버스 한 후에 다시 이어지는 크랙을 따라 오르는 루트다. 초반에 우측 날등의 '생공사'길과 나란히 진행하는 크랙 구간이 쉽지 않았다. 선등하는 입장에서 안으로 몸을 비비면서 등반해야 했다. 맘 같아선 스태밍 자세로 멋지게 오르고 싶었지만 몸을 빼내기가 여의치 않았다. 다섯째 피치는 이전 피치보다는 완만하고 손홀드 양호한 크랙을 따라 오르는 비교적 쉬운 구간이었지만 등반거리가 50미터를 훌쩍 넘었다. 마지막 여섯째 피치는 초반의 숲을 빠져나와 만나게 되는 참기름 바위를 올라서는 것으로 등반이 종료된다. 정상에 얹혀진 바위에 리볼팅 작업 이후 새롭게 설치된 쌍볼트 확보점에서 후등자 확보를 보니 여러모로 편리했다. 참기름 바위를 오르는 것도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광복절 대체 공휴일이어서 기영형과 함께 모처럼 줄을 묶을 수 있었다. 원래는 '취나드B'길을 오를 계획이었으나 이미 열 명도 넘는 팀이 우리 앞에서 첫 피치를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길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플랜B로 '크로니'길 출발점 앞으로 이동하여 크랙을 따라서 '인수B'길에 진입하기로 했다. 내가 먼저 오르고, 기영형이 쎄컨, 은경이가 라스트를 맡았다. 항아리 크랙 앞에서 모인 우리 앞팀과 뒤를 따르는 팀 모두 3명으로 구성된 자일파티였다. 대규모 인원이 한 팀으로 줄줄이 바윗길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우리 뒷팀의 선등자 분은 팔순의 노익장을 과시하고 계셨다. 내가 과연 그 나이가 됐을 때도 바윗길에 붙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여러모로 존경스러웠다. 오랜만에 고전적인 '인수B'길에서 정말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어 더욱 소중한 형과 친구가 함께 악우가 되어 자일을 묶었다. 오래된 것들의 가치와 오랜 시간 동안 등반을 사랑할 수 있는 열정에 대해서 새삼 곱씹어 볼 수 있었던 뜻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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