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동시에 내 기억의 불확실성을 인정해야 했다. '배추흰나비의 추억'길 리볼팅 작업을 했던 때가 언제였던가 정확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블로그를 펼쳐보니 작년 3월의 일이었다. 이보다는 이삼 년 전으로 알고 있었는데 고작 1년이 조금 지난 것이다. 리볼팅 작업 이후로 '배추흰나비의 추억'길을 등반하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한 지가 꽤 됐던 모양이다. 무슨 일이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실제보다 오랜 세월처럼 느껴지는 듯하다.
대체공휴일 지정으로 광복절이 중간에 낀 3일 연휴의 첫 날이다. 그간 마음 속으로 품고만 있던 '배추흰나비의 추억'길을 매우 즐겁고 만족스럽게 등반할 수 있었다. 평소에 인기 높은 바윗길이라서 주말엔 혼잡스러울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다. 선뜻 '배추흰나비의 추억'길 등반 계획을 세우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번 연휴 기간엔 서울의 클라이머들이 설악산과 대둔산으로 몰릴 것이란 예상이 적중했는지 오늘 하룻 동안 이 바윗길은 오롯히 우리팀만의 차지가 되었다. 흐린 날씨가 오히려 등반하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오후에 소나기 예보가 있어서 내심 걱정스러웠지만 도봉산엔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았다. 우려했던 무더위도 없었고, 대신 등반하는 내내 초가을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었다. 상쾌한 기분 속에 우리만의 등반에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원래는 리볼팅 작업을 같이 했던 기영형과 함께 등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예방접종 후의 어깨통증 탓에 형은 쉬기로 하고, 대신 이틀 후의 인수봉 등반에서 만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다양한 형태의 크랙과 슬랩이 산재한 '배추흰나비의 추억'길은 정말 재미있고 등반성 높은 바윗길이었다. 오늘 함께 줄을 묶은 모모와 나의 현재 등반 수준에서 적당히 어렵고 조금은 도전적인 구간들이 많아서 등반을 마치고 난 후에 서로 나눌 수 있는 얘기가 많았다. 할 얘기가 많이 남는 등반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등반인 것이다. 등반할 때와 리볼팅 작업했을 때 접한 바윗길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글루인 볼트로 새롭게 단장된 '배추흰나비의 추억'길은 선등자의 입장에서 적재적소에 볼트가 위치해 있어서 안정감을 주었다. 전반적으로 자일 유통과 하강도 깔끔했다. 리볼팅 작업 때는 정상에서 거꾸로 내려오면서 노후 볼트 철거와 기록을 맡았었다. 그때는 세세한 홀드와 볼트 위치의 적정성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오늘은 처음부터 마지막 피치까지의 등반과 마무리 하강까지 차근차근 세세히 바윗길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배추희나비의 추억'길 전체가 비로소 환해진 느낌이었다.
2020년 3월 21일에 '배추흰나비의 추억'길 리볼팅 작업이 있었다.
아래는 당시의 기록이다.
https://blog.daum.net/gaussmt/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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