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도봉산 '배추흰나비의 추억' - 2021년 8월 14일(토)

빌레이 2021. 8. 14. 22:00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동시에 내 기억의 불확실성을 인정해야 했다. '배추흰나비의 추억'길 리볼팅 작업을 했던 때가 언제였던가 정확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블로그를 펼쳐보니 작년 3월의 일이었다. 이보다는 이삼 년 전으로 알고 있었는데 고작 1년이 조금 지난 것이다. 리볼팅 작업 이후로 '배추흰나비의 추억'길을 등반하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한 지가 꽤 됐던 모양이다. 무슨 일이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실제보다 오랜 세월처럼 느껴지는 듯하다.

 

대체공휴일 지정으로 광복절이 중간에 낀 3일 연휴의 첫 날이다. 그간 마음 속으로 품고만 있던 '배추흰나비의 추억'길을 매우 즐겁고 만족스럽게 등반할 수 있었다. 평소에 인기 높은 바윗길이라서 주말엔 혼잡스러울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다. 선뜻 '배추흰나비의 추억'길 등반 계획을 세우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번 연휴 기간엔 서울의 클라이머들이 설악산과 대둔산으로 몰릴 것이란 예상이 적중했는지 오늘 하룻 동안 이 바윗길은 오롯히 우리팀만의 차지가 되었다. 흐린 날씨가 오히려 등반하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오후에 소나기 예보가 있어서 내심 걱정스러웠지만 도봉산엔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았다. 우려했던 무더위도 없었고, 대신 등반하는 내내 초가을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었다. 상쾌한 기분 속에 우리만의 등반에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원래는 리볼팅 작업을 같이 했던 기영형과 함께 등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예방접종 후의 어깨통증 탓에 형은 쉬기로 하고, 대신 이틀 후의 인수봉 등반에서 만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다양한 형태의 크랙과 슬랩이 산재한 '배추흰나비의 추억'길은 정말 재미있고 등반성 높은 바윗길이었다. 오늘 함께 줄을 묶은 모모와 나의 현재 등반 수준에서 적당히 어렵고 조금은 도전적인 구간들이 많아서 등반을 마치고 난 후에 서로 나눌 수 있는 얘기가 많았다. 할 얘기가 많이 남는 등반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등반인 것이다. 등반할 때와 리볼팅 작업했을 때 접한 바윗길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글루인 볼트로 새롭게 단장된 '배추흰나비의 추억'길은 선등자의 입장에서 적재적소에 볼트가 위치해 있어서 안정감을 주었다. 전반적으로 자일 유통과 하강도 깔끔했다. 리볼팅 작업 때는 정상에서 거꾸로 내려오면서 노후 볼트 철거와 기록을 맡았었다. 그때는 세세한 홀드와 볼트 위치의 적정성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오늘은 처음부터 마지막 피치까지의 등반과 마무리 하강까지 차근차근 세세히 바윗길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배추희나비의 추억'길 전체가 비로소 환해진 느낌이었다. 

 

2020년 3월 21일에 '배추흰나비의 추억'길 리볼팅 작업이 있었다.

아래는 당시의 기록이다.          

https://blog.daum.net/gaussmt/1341

 

도봉산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 리볼팅 작업 - 2020년 3월 21일

<배추흰나비의 추억> 바윗길에 대한 리볼팅(rebolting) 작업에 참가했다. 기존의 나사형 볼트에 비해서 보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하면서 환경 친화적인 것으로도 평가 받는 글루인 앵커(glue-in anchor)

blog.daum.net

 

▲ 석굴암과 만월암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있는 돌로 된 이정표가 오늘따라 정겨워 보였다.
▲ 만월암으로 가는 길에서 올려다 본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이때까지만 해도 잔뜩 흐린 하늘이 조금 걱정스러웠다.
▲ 자운봉으로 이어지는 릿지인 '배추흰나비의 추억'길 출발점은 만월암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다.  
▲ 1피치 초반부를 오르고 있다. BD 캐머롯 울트라라이트 4호를 실전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 1피치 초반부는 크랙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BD 4호와 3호 캠으로 중간 확보점을 구축하면서 올랐다.
▲ 리볼팅 이후 위치가 높아진 1피치 확보점에서 후등자 확보가 용이했다. 1피치 등반거리는 40미터 정도 된다.
▲ 예전보다 짧아져 15미터 정도 되는 2피치는 첫 볼트만 넘어서면 별 어려움이 없는 구간이다.
▲ 2피치에서 후등자 확보를 위한 슬링이 소나무에 설치되어 있었다. 리볼팅 때는 봉우리 너머에 있는 확보점을 이용할 것을 염두에 두었었는데, 후등자 확보 때는 아무래도 불편했던 모양이다.
▲ 2피치 봉우리 꼭대기에서는 3피치와 4피치의 등반 라인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 2피치 봉우리 너머에 설치되어 있는 쌍볼트 확보점에서 짧게 하강하여 중간에 1미터도 안 되는 침니를 뛰어 넘으면 3피치 출발점에 도착할 수 있다. 유튜브 영상에서 이 구간에 티롤리안 브릿지를 설치하고 여러 명이 건너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 크랙 등반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3피치 초반부를 오르고 있다.
▲ 3피치는 중간까지 손홀드 좋은 직상 크랙이 이어져 캠을 충분히 이용해 등반했지만, 후반부는 슬링을 이용해 인공으로 오를 수 밖에 없었다. 
▲ 4피치는 '배추흰나비의 추억'길에서 가장 특징적인 구간이다. 밴드를 따라 트래버스 하는 4피치 초반부를 오르고 있다.
▲ 4피치 중반부의 크랙은 캠을 설치하기에도 애매한 구간인데 적절한 위치에 2개의 볼트가 있어서 선등자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 전체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4피치 후반부의 크랙 구간에 진입 중인 모습이다. 캠을 아낌 없이 사용하고 올랐다.
▲ 내게는 가장 어렵고 조금은 도전적이었던 4피치를 안전하게 마무리한 후 확보점에 도착한 순간의 기쁨은 컸다. 
▲ 5피치는 사진 상에서 등반 중인 지점에 있는 볼트만 통과하면 쉽게 오를 수 있었다.
▲ 6피치는 지금까지의 크랙과는 딴판인 슬랩 구간이 이어진다.
▲ 인수봉이나 선인봉의 한 구간을 옮겨 놓은 듯한 슬랩이 이어지는 6피치는 볼트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깝게 느껴져서 즐겁게 오를 수 있었다.
▲ 등반거리가 45미터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슬랩이 계속되는 6피치는 중간에 한두 차례 쉬어가야 했다. 빌레이어가 선등자를 볼 수 있는 시야 확보가 필요할 경우엔 확보점에서 물러나 소나무에 슬링으로 확보점을 구축하면 된다.
▲ 7피치는 6피치 확보점에서 우측 세로 크랙을 올라선 다음 연기봉 정상을 지나서 보이는 확보점까지 가면 끝난다.
▲ 마지막 확보점에서 바라본 포대능선의 Y계곡 풍경이다.
▲ '배추흰나비의 추억'길 종착점인 연기봉 정상이다.
▲ 연기봉에서 바라본 만장봉 모습이다.
▲ 예전엔 연기봉 뒤에 있는 자운봉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는데, 지금은 통제구역이 되었다. 
▲ 연기봉 너머의 7피치 확보점에서 15미터 정도를 하강하면 다시 하강 포인트가 나온다.
▲ 1차 15미터 하강 후, 소나무 좌측의 확보점에서 30미터를 하강하면 등반이 종료된다.
▲ 마지막 30미터 하강 중이다.
▲ 아침보다 맑아진 날씨 덕에 만장봉 풍경이 더욱 멋졌다. 오늘은 고개를 쳐들고 있는 개 한마리 형상으로 보였다.
▲ 근래 들어 캠을 가장 많이 사용했던 등반이었다. 
▲ 두 날개의 크기가 달라서 V자 형 크랙에서도 잘 설치되었던 이 캠을 4피치 후반부에서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 캠을 배낭 속에 넣을 때 고장의 원인이 되는 짓눌림 방지를 위해 내가 사용하는 보호 케이스.
▲ 근교 등반 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자일과 헬멧을 비상용 배낭에 패킹하여 앞으로 둘러메니 편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