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독후감] 화씨 451 - 레이 브래드버리

빌레이 2021. 1. 12. 10:47

나는 공상과학 소설이나 환상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수학 전공자로서의 성향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 비현실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는 문학작품 속의 스토리 전개는 논리적 비약이 심해서 쉽게 수긍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소설이라도 너무 허황되어 그럴듯하지 않은 이야기는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곤 한다. 소설가 김승옥 선생이 했던 말로 기억하는데, "기사는 있는 사실을 쓰는 것이고, 소설은 있을 수 있는 얘기를 쓰는 것이다"란 정의가 나는 적절하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이전과는 너무나 다른 일상을 살고 있는 현실에서 책을 대하는 나의 자세도 조금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펼쳐든 책인 <화씨 451>이다.

 

최근 산길을 오래 걸으면서 독서가 도보 여행과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것과 영상 매체를 보는 것, 걷기 여행과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한 여행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독서와 도보 여행을 할 때는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지만, TV를 보거나 자동차로 여행할 때는 상대적으로 거의 생각하는 시간은 없다. 코로나로 인한 새로운 통제 사회를 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1953년 작품인 <화씨 451>에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가 묘사했던 디스토피아적 미래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우울했다.

 

21세기에 5~6년 주기로 인류가 겪고 있는 에이즈, 사스, 메르스, 코로나 등의 바이러스는 모두 야생동물에서 사람으로 전이됐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인간이 자연을 심각하게 파괴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바이러스는 야생동물들만을 숙주로 해서 살아갔을 것이고, 인간에게는 지금과 같은 폐해를 끼치지는 않았을 것이란 주장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렇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세상 속에서는 인간의 생각이 통제되는 사회를 살아갈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상상이 현실화 될 듯한 불암감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이다. <화씨 451>은 책이 금지된 미래가 어떤 세상일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