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백운산 눈 산행 - 2005년 12월 28일

빌레이 2009. 5. 28. 17:20

눈길을 걷는 산행이 힘들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힘든 만큼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산행도 눈길을 헤치고 걸었던 적이 많습니다. 

어제의 백운산 눈길도 힘겨웠습니다. 그러나 순백의 눈길 속에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도시의 눈은 깨끗하지 않지만, 산중의 눈은 정말 순도 백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화요일 오후 캐빈과 다음날 번개 산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심신이 피곤해 보이는 친구의 목소리, 무작정 떠나고 싶은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가능할 것 같은 노아님께 연락드렸더니 호쾌하게 동행을 결정하십니다. 

수요일까지 써야할 보고서를 부랴부랴 마무리 짓고, 다음날 캐빈의 차에 노아님과 동승했습니다.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을 잇는 산줄기는 겨울에 한 번은 꼭 타고 싶었던 곳입니다.

캐빈이 장소를 물어올 때, 두 말 없이 이 곳을 가자고 한 것도 평소의 이런 마음이 반영된 것입니다.

이동 갈비로 유명한 포천군 이동면에 백운계곡이 있습니다. 그 위의 산이 백운산입니다.

정오쯤에 흥룡사 방향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흥룡사를 출발해서 백운봉, 도마치봉, 흥룡봉을 거쳐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라운드 산행이 백운산 등반의 일반적인 코스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방향을 잡았습니다.

흥룡사에서 백운봉에 이르는 능선길은 꾸준한 오르막 길입니다.

오솔길 같은 등산로가 정겹지만, 속이 좋지 않아 구토 증세가 있었던 제게는 힘든 길이었습니다.

 

정상까지는 4킬로 정도의 오르막이었고, 가는 내내 캐빈의 전화통은 울려댑니다.

바쁜 연말의 분위기를 산에서도 잊기 힘든 친구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노아님은 씩씩하게 잘도 올라가십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첩첩 산중의 힘찬 살줄기들의 경연장을 방불케합니다.

북으로 광덕산과 캐러멜 고개가 보이고, 남으로는 국망봉으로 향하는 산줄기가 이어집니다.

 

백운봉에서 도마치봉에 이르는 주능선은 눈길 산행의 진수를 맛보기에 충분했습니다.

속이 좋지 않아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나 때문에 노아님과 캐빈도 뭘 먹지 않습니다.

눈길을 헤쳐가는 힘든 중에도 기분은 참 상쾌합니다.

캐빈은 눈 위에서 뒹굴기도 하고, 무릎 위까지 빠지는 눈 속에 일부러 들어가기도 합니다.

고도가 있어서 그런지 전화통도 이제는 울리지 않습니다.

 

도마치봉에서는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마치 하얀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그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하산길에 접어들었습니다.

흥룡봉 아래에서 계곡길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사람의 발자국이 없는 깨끗한 길이었습니다.

 

산악회 리본에 의지해서 길을 찾아야 했던 계곡길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누군가의 발자국이라도 있으면 훨씬 수월할텐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전인미답의 길을 간다는 것, 창조의 고통, 개척자의 고독함 등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깨끗한 눈의 실체를 경험한 희열은 큰 것이었습니다.

 

계곡길 말미의 돌탑은 확실한 사람의 흔적이라는 의미에서 반가운 것이었습니다.

돌탑 자체도 소박하고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흥룡봉에서 하산하는 길을 만나는 순간 고속도로를 본 기분이었습니다.

여섯 시간 가까이 계속된 눈길 산행을 마치는 순간 피로감이 몰려왔습니다.

 

일동의 약국에서 약을 사먹고, 의정부에서 간단한 망년회를 가졌습니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파사 형을 만나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써니님과 선희님도 합류해서 오붓한 만남으로 한 해를 정리했습니다. 그 만남이 참 행복했습니다.

캐빈이 집까지 태워준 덕택에 편하게 들어왔지만, 몸에서는 오한이 났습니다.

 

몸살약을 먹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아침에는 조금 살만했습니다.

배 속은 여전히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장염이라고 합니다. 이틀 정도 약 먹으면 나아질 거랍니다.

녹차 마시면서 이글을 쓰는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힘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산행을 같이한 노아님과 캐빈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오늘 방학을 맞이한 아들 녀석에게 일출 산행의 동행을 제안했더니 선뜻 승낙합니다.

그래서 아들 놈과 같이 새해 일출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Happy New Year !!!

 

 

1. 주차장에 있는 산행 안내도


2. 백운봉 정상 (해발 904미터)


3. 백운봉 조망... 멀리 보이는 산이 광덕산, 움푹 패인 곳이 캐러멜 고개


4. 백운봉에서 도마치봉 가는 주능선길


5. 스패치를 시험하느라 일부러 눈 속으로 가는 캐빈...


6. 눈이 쌓인 곳은 무릎 보다 깊다...


7. 도마치봉 정상... 캐빈과 함께 오랜만에 한 컷. 그림자는 노아님.


8. 도마치봉에서 본 국망봉 (해발 1168미터)... 하얀 능선길이 보인다.


9. 계곡길 얼음 위에서의 장난... 눈도 얼음도 순결함을 잃지 않은 듯...


10. 계곡길 말미의 돌탑... 청아한 아름다움.

11. 능선길 중간에서 잠깐 동안의 휴식.


12. 계곡길 말미에서는 모두가 지친 모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