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오봉 등반 - 2016년 8월 27일

빌레이 2016. 8. 27. 20:39

어느날 갑자기 가을이 된 듯하다. 엊그제 내린 비가 장기간 지속된 무더위를 깨끗하게 날려버렸다. 서늘한 초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상쾌한 토요일 아침이다. 8시 정각에 우이동의 편의점에서 네 사람이 만난다. 오랜만에 기영이 형이 합류했다. 우이능선의 테라스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매바위와 우이암을 돌아가는 오솔길을 걷는다. 도봉산 주능선이 이어지는 넓은 등로에 올라서서 잠시 걷다가 오봉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든다. 오봉샘 부근에서 잠시 쉬면서 볼더에 붙어 장난을 쳐본다. 위염 증세로 고생하면서 소식 해야 했던 까닭인지 생각보다 몸은 가볍다.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다섯 개의 봉우리들이 반겨주는 오봉 1봉 정상에서 우연히 기송이 형을 만난다. 그쪽도 한 팀을 이뤄 오봉 등반에 나설 차림새다. 우리가 먼저 2봉으로 가서 장비를 착용하고 곧바로 3봉으로 가서 60 미터 자일 한 동으로 30 미터를 하강 한다. 네 사람 모두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4봉 아래에 모인다. 대섭이의 빌레이를 받으면서 4봉을 등반한다. 대섭이와 기영이 형 순서로 오르고 은경이가 라스트를 맡는다. 자일 두 동으로 오버행 하강을 마친 후 아늑한 안부에서 점심 시간을 갖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우이령과 북한산의 풍광은 평화롭다. 상장능선 너머로 보이는 인수봉은 균형 잘 잡힌 삼각뿔 모양이다. 북한산 산행을 하면서 가까이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설교벽과 인수릿지, 숨은벽과 염초 능선도 또렷하게 보일만큼 청명한 대기가 가을날을 실감케 한다.


홀드 양호한 애기봉을 쉬운 볼더링 문제 풀듯이 가볍게 올라서서 30 미터 오버행 하강을 한다. 우리 바로 뒤의 기송이 형 팀 외에도 여러 명이 오봉 등반을 즐기고 있다. 우리는 조금 서두른 덕택에 맨 앞에서 등반하느라 정체를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 싶다. 마지막 5봉 등반까지 안전하게 마치고 기념 사진을 남긴다. 기다리고 있는 60 미터 오버행 하강은 항상 부담스럽다. 두 번 세 번 자일 상태 등의 안전을 확인한 후 조심스럽게 하강을 완료한다. 등반 난이도로 볼 때 함께 한 자일파티 네 사람 모두에게 오봉은 이제 조금 싱거운 등반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하지만 초가을의 높고 청아한 하늘 아래에서 도봉산의 산길을 거닐며 서늘한 바람 맞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었다. 더욱이 아름다운 자태의 오봉에서 부담 없이 안전하게 등반을 즐길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