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노적봉 반도길 등반 - 2016년 9월 10일

빌레이 2016. 9. 10. 18:45

북한산 노적봉의 반도길은 고전적인 바윗길이다. 크랙과 침니를 따라 노적봉 정상까지 이어지는 아홉 피치는 매우 자연스런 등반선을 이룬다.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등반을 즐길 수 있는 클래식 루트인 셈이다. 대섭이가 아직 올라보지 못했다고 하여 올해 두 번째로 반도길을 등반하기로 약속한다. 강남의 집에서 새벽 5시경에 출발한 대섭이가 강북에 사는 나와 은경이를 차례로 픽업하여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6시 즈음이다. 아직은 주차 공간에 여유가 있으서 좋다. 용암문을 통과하여 어프로치를 하는 기분이 상쾌하다. 엊그제 백로가 지난 가을날의 서늘함이 느껴진다.


아직 이른 시각인 아침 8시 즈음에 첫 피치를 출발한다. 옅은 새털 구름이 깔린 하늘이 약간 흐리지만 등반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다. 간간히 불어주는 가을 바람이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진다. 조용한 노적봉에 우리 친구들 셋이서 등반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큰 소나무가 있는 셋째 피치 확보점까지는 슬랩 등반이다. 노적봉 바윗길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초반 피치는 항상 부담스럽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그런대로 오를만한 경사도인데 막상 붙어보면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긴장감을 가지지 않으면 슬랩에서 밀리기 일쑤다. 반도길도 셋째 피치 확보점에서 내려다보는 기울기는 출발점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직벽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넷째부터 여섯째 피치는 대침니를 통과하여 코바위 상단 바로 우측에 이르는 구간이다. 손홀드가 많아서 등반의 재미가 살아나는 곳이다. 레이백과 스태밍 자세를 취해서 오르는 등 다양한 형태의 등반을 즐길 수 있다. 일곱째와 여덟째 피치는 크랙과 밴드를 따라 이동하는 트래버스 구간이 포함되어 있어서 또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마지막 아홉째 피치는 크랙을 따라 첫번째 턱을 올라선 후 경사도가 약간 높은 슬랩을 오르면 되는 곳이다. 아홉 개의 피치들 모두 30 미터 내외의 길이여서 60 미터 한 동으로 셋이서 등반하기에 아주 적절하다. 익숙한 반도길이지만 선등하는 동안 신중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예전과 다르게 캠을 설치하면서 자일 유통까지 생각하여 슬링을 사용하는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쎄컨으로 빌레이를 본 대섭이와 라스트를 맡으며 촬영까지 담당한 은경이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으니 시종일관 든든한 마음으로 등반한다. 


어떠한 장애물이나 어려움 없이 자일파티 모두가 물 흐르듯 유연한 등반을 할 수 있었기에 생각보다 이른 시간 내에 등반이 끝난다. 중간 피치에서 간식도 먹고 적당한 휴식을 취했는데도 정오가 안 되어 노적봉 정상에 도착한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친구들이 모여 점심 시간을 갖은 후에도 한참 동안을 놀다가 하산한다. 최근 실내 암장에서 일레븐(5.11a) 코스 두 개를 완등한 기념으로 은경이가 한 턱 쏜 오리고기까지 맛있게 먹는 것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한다. 말이 필요 없고 서로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친구들과의 등반은 언제나 편안하고 만족스럽다. 노적봉에서도 가장 자연스럽고 유서 깊은 루트라 할 수 있는 반도길의 아기자기한 등반선처럼 우리들의 우정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