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불암산 슬랩 타기 - 2016년 5월 14일(석가탄신일)

빌레이 2016. 5. 14. 21:09

지난 한 주간 동안 몸이 좀 힘들었다. 다행히 몸살 감기가 심하지 않게 지나갔다. 스승의날이 다가온다고 하여 학부생들과 대학원생들이 조촐한 기념식을 열어주었다. 졸업한 제자들도 여러 명이 찾아와 주었다.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그들에게 내가 좋은 선생이었을까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요즈음엔 강단에서의 열정도 많이 식어진 것을 스스로 깨닫고 반성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존경은 받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선생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내게 맡겨진 소중한 인연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생각하고 더욱더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야 할 일이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풍성했던 한 주간을 보냈다는 감사함이 남는다.


음력으로 사월 초파일인 석가탄신일이 토요일과 겹쳤다. 산행하기 정말 좋은 날씨다. 좋지 못한 몸 상태를 감안해서 암벽등반을 하고 싶은 마음을 접는다. 간단히 불암산 슬랩에서 아쉬움을 달래기로 한다. 무거운 등반장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릿지화만으로 바위를 즐기던 시절을 회상하며 단촐한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가벼운 배낭을 메니 몸과 마음까지 가뿐해진 기분이다. 상계역을 출발하여 예전에 오르던 영신슬랩부터 차분히 즐겨본다. 오로지 릿지화의 마찰력에 기대어 드넓은 바위 경사면을 걷는 기분이 새롭다. 한성대 암장도 둘러보고 아기자기한 슬랩 루트들을 연결하여 위로 올라간다. 그 어느 때보다 잘 붙는 릿지화의 감촉이 믿음직하다. 바위 그늘이 드리워진 전망 좋은 테라스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쉬어간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이다.


넓은 침니에서 몸째밍과 다리를 넓게 벌려 지탱하는 스태밍 자세도 연습하면서 능선 반대편의 남양주시 지역으로 이동한다. 천보사를 거쳐 불암사로 내려서기까지 많은 불자들을 만난다. 잠시 들러본 불암사 경내는 초파일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시 슬랩을 타기위해 불암사 우측 슬랩으로 향한다. 정상으로 길게 이어진 슬랩을 타고 오르는 발걸음이 전혀 힘들지 않다. 해를 등지고 오르는 슬랩에 드리워진 소나무 그림자가 이채롭다. 먹물을 가득 머금은 붓으로 화선지 위에 그린 한폭의 동양화를 본 듯하다. 자연 속의 예술작품인 것이다. 계속 바위를 타고 정상에 올라 수락산으로 가는 능선길을 타고 하산한다. 덕릉고개에서 수락산으로 넘어가지 않고 다시 불암산 둘레길을 따라서 산행 출발지였던 상계역으로 돌아온다. 그다지 크지 않은 불암산에서 슬랩을 찾아다니며 7시간 가까이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닌 셈이다. 내 몸에 다시금 활기가 솟는 듯한 치유의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