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이다. 철쭉이 아파트 화단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산속에서 연초록 빛깔의 신록과 어울어진 철쭉은 더욱 아름답다. 북한산 숲속을 거닐면서 눈부신 철쭉과 신록의 향연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자연 바위의 듬직한 질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도 한 켠엔 남아 있다. 주말 산행으로 암벽 등반과 걷기 사이에서 잠시 망설인다. 산의 계절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즘의 자연을 온몸으로 만끽하고자 하는 욕구가 앞선다. 결국 암벽 등반은 뒤로 미루기로 결정한다. 단촐한 차림으로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다. 어느새 4월의 마지막 날이다. 아파트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솔샘터널 위의 둘레길로 접어든다.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산에 일찍 안길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한다.
아침 6시 반 즈음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운동 중이다. 칼바위 능선으로 올라가는 중간의 생태 공원은 화려한 꽃밭이다. 울긋불긋한 철쭉꽃과 싱그러운 초록빛이 조화를 이룬 그 모습이 활홀경이다. 길게 이어지는 칼바위 능선은 온통 연달래 꽃길이다. 집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길이 있었던가 생각하면서 새삼 감탄하게 된다. 자연의 품 속에서 조화롭게 피어 있는 연달래는 인공적인 화단의 철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기품 있는 연분홍 빛깔은 이제 막 여인으로 피어나기 시작한 소녀의 화사한 볼을 닮았다. 청순한 그 모습이 바라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드라"로 시작되는 노래를 저절로 읊조리게 된다.
청명한 하늘이 아쉽지만 칼바위 정상의 조망은 여느 때 못지 않게 시원스럽다.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예쁜 꽃을 피우고 있는 연달래를 피사체로 삼아 사진을 찍어 본다. 연초록 물결이 넘실대는 산성주릉 너머로 우람하게 서있는 삼각산의 잘생긴 봉우리들이 멋진 배경을 장식해 준다. 다소 세찬 바람을 맞으며 골짜기를 채워가는 신록의 향연을 한참 동안 감상한다. 산성주릉에 올라서서 좌회전 한다. 다시 보국문에서 북한산성으로 내려가는 계곡길을 따른다. 행궁지가 있는 산성계곡 주변은 바람도 순하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아카시아처럼 그윽한 향기를 품으며 흐드러진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계곡의 풍성한 봄을 만끽하고 태고사에서 다시 산성주릉으로 올라선다. 발길 닿는 대로 이리 저리 숲속을 헤매고 다니는 발걸음이 전혀 피곤치 않다.
이제는 성벽길을 따라서 동장대와 대동문을 지나 다시 칼바위 능선으로 돌아온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를 넘나드는 꼴이다. 철쭉꽃과 신록이 어우러진 성벽길 주변 풍광도 멋지다. 철쭉을 근경으로 놓고 동장대를 원경으로 배치한 사진을 담아본다. 대동문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서있는 모습을 성벽길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평상시와 다른 시선이다. 인공적인 성벽 틈새에 피어난 민들레도 어여쁘다. 간간히 노란색 각시붓꽃도 보인다. 아침에 올랐던 칼바위 릿지를 우회하는 길을 따라 내려와서 냉골로 향하는 능선을 따른다. 칼바위 능선은 주릉의 등산로뿐만 아니라 주변의 지릉에도 연달래가 지천이다. 진달래 능선이 부럽지 않다. 이제부터는 칼바위 능선을 "연달래 능선"이라 부르고 싶다. 국립재활원으로 하산해서 주변의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다시금 둘레길을 따라서 집으로 돌아온다. 8시간 정도의 시간을 북한산 숲속에서 보낸 셈이다. 신록의 연초록과 연달래의 연분홍 빛깔로 온몸이 물든 듯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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