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철원 궁예봉과 포천 명성산 - 2016년 1월 30일

빌레이 2016. 1. 31. 20:43

새해도 벌써 한 달이 흘러가고 있다. 분주하게 보낸 1월이었다. 다행히 금요일 밤까지 그동안 애써오던 논문을 투고할 수 있어서 흡족했다. 무엇보다 토요일에 산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토요일 아침을 맞이한다. 애마인 그랜저에 몸을 싣고 7시 반에 서울을 출발하여 9시경에 산정호수 주차장에 도착한다. 여러 차례 올랐던 명성산이지만 전혀 싫증이 나지 않는다. 언제든 상쾌한 기분으로 다시 찾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산행에서는 명성산 종주를 할 때마다 눈에 밟혔지만 한 번도 올라보지 못했던 궁예봉을 먼저 찾기로 한다. 산정호수 둘레길을 걷다가 산안고개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른다. 주변에 그림 같이 예쁘게 들어선 펜션들을 구경하면서 걷는 기분이 괜찮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원색 계열의 북구풍 펜션 단지도 보인다. 겨울이 긴 산정호수 주변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끝나고 시멘트로 포장된 산길을 조금 오르니 산안고개에 닿는다. 이 고개는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포천군의 경계선 근방으로 명성산 종주할 때 매번 하산했던 지점이어서 낯익은 곳이다. 고갯마루에서 우측으로 이어진 산길을 따라 오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산안폭포가 나타난다. 주변 절벽과 하얗게 얼어붙은 폭포의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직벽은 아니지만 제법 긴 길이의 빙폭이 빙벽등반지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악우들과 함께 빙벽등반을 즐기고 싶은 곳이다. 매월대폭포와 산안폭포를 연계해서 1박2일로 등반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폭포 위의 계곡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부려본다. 간만에 쾌청한 하늘과 고즈넉한 주변 환경이 마음을 한없이 편안하게 감싸주는 느낌이다.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 산길을 따라 오르니 궁예봉과 명성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당연히 좌측의 궁예봉 방향으로 오른다. 마루금에 올라서서 좌회전 하여 궁예능선을 향한다. 처음 밟아보는 길인지라 약간의 설레임이 있어서 좋다. 기울기가 만만치 않은 오솔길이 이어지지만 길은 또렷하다. 뾰족한 암봉 하나를 넘어서서 가파른 바윗길을 올라선 곳이 궁예봉 정상인 듯하다. 정상 표지석이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궁예능선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정상의 테라스에서 명성산 주능선을 굽어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근래에 보기 드문 최고의 쉼터에서 점심을 먹으며 김광석의 노래와 함께 망중한을 즐긴다. 궁예봉을 돌아서기 전에 이어지는 궁예능선을 조금 더 걸어본다. 내리막길 직전의 바윗턱에서 바라보는 조망 또한 일품이다. 좌측으로 산정호수가 아스라히 보이고 우측으로는 드넓은 철원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어지는 궁예능선의 뾰족한 암봉들도 클라이머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는 멋진 모습이다.


궁예봉에 올라서서 주변 풍광을 충분히 즐긴 후에 오던 길을 돌아서서 명성산 정상으로 향한다. 다시 익숙한 산길이지만 명성산 주능선을 반대 방향으로 걷는 기분이 남다르다. 명성산과 삼각봉 정상을 지나서 억새평원까지 이어지는 마루금은 언제 걸어도 기분 좋은 길이다. 나무가 거의 없어 탁트인 조망을 마음껏 즐길 수 있고 비교적 평탄한 오솔길이 이어지는 이 마루금 길은 이국적인 느낌마저 든다. 억새평원 위의 팔각정에서 간식을 먹고 잠시 쉬어간다. 가을이면 탐방객들로 북적였을 억새평원이 한적해서 좋다. 등룡폭포와 비선폭포까지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이어진 드넓은 산길은 억새 축제 기간 동안 일시에 찾아드는 인파로 인한 것일 게다. 이 길을 따라 천천히 하산하면서 하얗게 얼어붙어서 또렷한 물길을 보여주는 빙계를 구경한다. 잣나무와 낙엽송의 시원스런 수직선들이 반겨주는 비선폭포 주변에 도착해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7시간 동안 15킬로미터 이상을 여유롭게 거닐면서 궁예봉과 명성산의 이색적인 풍광을 마음 속에 새길 수 있었던 뜻깊은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