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

베로나의 광장들

빌레이 2015. 7. 22. 15:15

일주일의 출장 기간 동안 숙소에서 베로나대학까지 시내를 관통하여 걸어서 출퇴근 하였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 힘겹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출발지와 도착지는 같았지만 날마다 경로를 달리하여 걸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베로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경로는 달리할지라도 매일 공통적으로 통과하는 광장들은 있었다. 아레나 옆의 브라 광장, 아름다운 조각품들과 종탑이 인상적인 에르베 광장, 생각에 잠긴 듯한 단테의 동상이 광장 중앙에 우뚝 서있는 시뇨리 광장 등은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거치게 되는 곳이다. 로마시대부터 형성된 유럽 도시의 기본 형태가 시가지의 골목길이 광장으로 모이게 되는 방사형 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탓일 게다.

 

출근하면서 보게 되는 이른 아침의 광장은 고요하고 한적해서 차분히 주변을 감상하고 잠시 쉬면서 상념에 잠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썸머타임이 실시되고 있는 시기라서 그런지 퇴근 시간인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에도 광장은 한낮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이다. 이 시간대의 광장은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활기찬 모습이다. 밤에는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광장 주변의 레스토랑 불빛이 꺼질줄 모른다. 대문호 단테의 동상 바로 옆의 레스토랑에서 목요일 밤에 있었던 학회 주최 리셉션은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밤하늘의 별빛이 보이는 시뇨리 광장의 노천에서 정통 이태리 코스 요리와 함께 부드러운 와인이 곁들여진 만찬이었다. 다소 딱딱할 수 밖에 없었던 낮시간의 세미나 분위기는 오가는 와인 술잔 속에 편안히 녹아내렸다. 여러 나라에서 참가한 학자들 사이에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스페인과 미국에서 온 교수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웃고 떠들었던 내게도 아주 유쾌한 순간이었다.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나마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평소의 독서 습관이 낯선 외국인들과의 대화에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