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면서 - 2015년 6월 24일

빌레이 2015. 6. 24. 19:46

나는 포기라는 말을 특별히 싫어한다. 고 박경리 선생께서 <토지> 서문에 쓰셨던 글귀를 또렷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상할 것인가".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살고 있는 이 구절 때문에 나는 포기하거나 저항하기보다 도전하는 삶의 자세를 견지하고자 노력해왔다. 하지만 근자의 내 생활은 도전하는 삶과 많이 멀어진 듯하다. 지난 주까지 탈고하고자 애쓰던 논문을 포기하기로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좀 더 성숙한 연구 결과를 얻기 위해 시기를 늦춘 것이긴 하다. 그래도 예전엔 이렇게 미루거나 포기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이듦이란 것이 이런 것이라면 바람직하지 못하다. 절실함이 결여된 지금의 내모습을 여유로움이란 말로 위장하는 건 비겁한 일이다. 요즘의 무기력증을 탈출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우선은 일과 상관 없는 책에 몰두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 싶다.

 

학기말 성적 처리를 끝내고 학교 생활을 떠나 잠시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고우영 선생의 만화책 <십팔사략>을 보면서 중국의 역사를 정리해 본다. 만화책을 보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지만 고우영 선생 특유의 해학 넘치는 그림과 통찰력 있는 해석이 재미 있다. 눈이 피곤해지는 걸 느끼는 순간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다. 클라이밍에 빠져 사느라 최근엔 거의 타지 않던 자전거를 청소하고 바퀴에 바람도 빵빵하게 넣어준다. 정릉천, 청계천, 한강변의 자전거길을 따라서 올림픽 공원에 도착한다. 우리 애들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무렵에 자주 찾던 곳이다. 박사학위 과정 속의 어려운 문제에 천착하여 헤매이던 시절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시간강사 노릇을 하면서 가난하게 살던 그때가 지금 생각하니 정말로 행복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열정과 패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캥거루 주머니 같이 자전거 핸들에 고정된 의자에 아들 녀석을 앉히고 한강 둔치를 함께 달리던 추억이 생각난다. 아들을 자전거에 태워 시원한 강바람 맞으며 달렸던 것을 지금 군 복무 중인 아들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 시절 가난한 아빠였던 내가 녀석에게 베풀 수 있었던 최고의 서비스였던 셈이다. 올림픽 공원을 나와 잠실의 한강변을 달리면서 이러한 옛생각에 젖어본다. 그리고 그때의 도전 정신을 되찾겠다는 다짐도 함께 마음 속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