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포천성당-왕방산-오지재-해룡산숲길-천보산-회암사지 (2015년 1월 10일)

빌레이 2015. 1. 11. 01:35

왕방지맥은 부드러운 산길을 오래 걷고 싶을 때 생각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수유역에서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는 직행 시외버스를 타고 포천터미널에서 내린다.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5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예전에는 택시를 타고 무럭고개에 가서 산행을 시작했었다. 이번엔 포천 시내에서 바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왕방산에 들기로 하고 포천성당 방향으로 걸어간다. 얼마 전에 다음지도에 새겨진 왕방산 등산로를 보고 염두에 두었던 루트이다. 포천버스터미널에서 포천시청 쪽으로 걸어오다가 왕방산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올라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성당이 보인다. 기품 있어 보이는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 성당 경내로 들어간다. 좌측에 현대식 성당이 있고 우측 언덕 위에는 폐허 같은 돌집의 옛 성당이 작은 성처럼 서있다.

 

성당 주차장에서 '양심의 문'이라 씌어진 곳을 통과하여 숲속 오솔길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길에 접어든다. 왕방산 정상까지는 6.1km 거리이다. 성당에서 500m를 진행하니 한국아파트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나고, 2.9km 지점에서 무럭고개로 이어지는 능선길과 합류한다. 무럭고개에서 시작하는 길은 몇 번 걸어보았기 때문에 익숙한 길이다. 다시 만나는 거북바위가 반갑고 정상 바로 앞의 팔각정도 여전하다. 왕방산 정상에서 주변을 일별하고 오지재로 향하는 왕방산 주릉을 따른다. 왕방산 정상에서 오지재까지는 3.2km 거리이다. 오지재를 1킬로미터 정도 남겨둔 지점의 전망 좋고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한참을 쉬어간다. 대진대학교 캠퍼스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따스한 겨울 햇볕과 점심 식사로 원기를 보충하고 낙엽송 군락지를 지나 오지재에 내려선다. 산악자전거를 탄다면 꼭 한 번 달리고 싶은 MTB 코스의 중간 지점인 오지재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해룡산 숲길에 접어든다. 7.1km의 해룡산숲길은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가는 널찍한 임도로 산악자전거 코스이다. 다른 계절엔 걷기에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겨울철엔 눈이 쌓여 있어 차나 자전거가 거의 다니지 않으니 조용한 트레킹을 즐기기에 그만인 코스가 된다. 해룡산숲길을 빠져나와 천보산을 향해 오르니 다리가 약간 뻑뻑해짐을 느낀다. 포천시 가산면과 천보산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쳐 약 1km를 걸어 오르면 천보산 정상이다. 그리 높지 않은 천보산이지만 조망은 시원하다. 회암고개로 이어지는 지맥길을 버리고 회암사지로 내려가는 산길로 방향을 잡는다.

 

회암사로 내려오는 산길은 급경사 바윗길이다. 서쪽 하늘로 기울어지는 해를 조망하기에 좋은 전망대가 널려있다. 저멀리 도봉산과 불곡산의 실루엣이 선명하다. 하산길은 김삿갓 풍류길과 만난다. 양주시 회암동에서 출생한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김병연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21km 길이의 트레킹 코스이다. 언젠가 한 번은 걸어보고 싶은 아늑한 둘레길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시대에 최대의 왕실 사찰이었다는 회암사는 현재 폐사지로 남아 있다. 폐사지 위쪽에 새로운 회암사가 들어서 있고 드넓은 회암사지엔 발굴 작업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서쪽 불곡산 너머의 산줄기 아래로 사라지고 있는 주홍빛 태양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아름답다. 눈부심 현상을 느끼지 않고 지는 해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붉게 물든 노을과 함께 황도 같이 예쁜 태양의 마지막 모습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만다. 회암사지로 내려오는 숲길 중간에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리다시피 하산길을 재촉했으나 허사였다. 숲속의 나무가 이때 만큼은 원망스럽다. 폐사지에서 저물어가는 석양을 즐기고 싶었는데 불과 몇 분 차이로 놓친 것이 못내 아쉽다. 폐사지 입구 쪽에 세워진 회암사지박물관 앞에서 덕정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는 것으로 트레킹을 마감한다. 8시간 동안 20km 정도를 걸었다. 포천시에서 걷기를 시작하여 양주시로 넘어왔다. 천주교 유적지에서 시작해서 불교 유적지에서 마무리 지은 루트였다. 역사적인 흔적과 함께 대중교통을 알차게 이용해서 긴 거리의 트레킹을 즐길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