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산 주릉은 한북정맥길이자 포천과 가평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운악산에 여러 번 다녔지만 모두 포천 방향에서만 올랐다. 운악사와 대원사가 있는 포천 방향은 47번 국도변에서 접근하기가 쉽고 용담암과 신선대 암장이 있어서 바위를 타기 위해 자주 찾았던 것이다. 2014년의 마지막 주말 산행지로 운악산이 떠올랐을 때에도 출발점은 포천 방향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른 아침 차를 운전해서 47번 국도 변의 운악사 입구 광장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은 폐쇄되었고 북서쪽의 운악산은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아서 한기가 느껴졌다. 반대로 능선 너머에 있는 남동쪽의 운악산은 하루 종일 해가 비칠 것 같았다. 등산 출발점을 현등사 방향으로 변경하고 차를 돌려 현리를 거쳐 가평군 하면의 운악산 입구로 향한다.
같은 산 다른 모습이다. 가평군 방향에서 본 운악산은 찬란히 떠오르는 해를 온몸으로 받으며 빛나고 있다. 현등사 입구의 기온은 영하 10도에 이르지만 춥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행장을 꾸리고 현등사 진입로를 오르다가 우측의 등산로에 접어든다. 겨울 바람도 없고 따사로운 햇볕이 함께 하니 산길을 오르는 것이 힘들지 않다. 눈썹바위 밑에서 잠시 차 한 잔과 간식을 먹으며 쉬어간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패러디 한 것 같은 눈썹바위 전설을 설명해 놓은 안내판의 내용이 재미 있다. 눈썹바위 좌측의 등로부터는 갑자기 가파른 경사면이다. 이 된비알을 올라서면 시야가 트인다. 이제부터는 눈이 즐겁다. 병풍바위 전망대에서 보는 운악산의 절벽미는 설악이나 금강산의 그림이 부럽지 않다. 청명한 하늘 아래 햇빛을 조명 삼아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펼쳐내고 있는 미륵바위와 병풍바위 일대의 바위 군상들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 위용을 감상하고 있노라니 내가 동양화 속에 아주 작게 그려진 선비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륵바위를 우회하여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험하지만 안전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별다른 위험은 없다.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오르는 그 길이 힘들지 않고 오히려 산을 타는 재미가 있다. 디귿자 모양으로 바위에 박힌 철제 계단을 손과 발 홀드 삼아 오르고 있으니 잠시나마 암벽 등반을 하고 있는 듯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정상 부근의 만경대에서는 화악산을 필두로 용문산까지 이어지는 겹겹의 산줄기가 눈 앞에 펼쳐진다. 좌측으로는 국망봉, 귀목봉, 화악산, 명지산, 연인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우측으로는 구름 위로 솟아난 용문산의 주릉이 이채롭다. 오랜만에 올라온 정상엔 비로봉이라는 정상석이 새롭게 설치되어 있다. 정상에서는 북한산의 뾰족한 봉우리들이 구름 위로 솟아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멀리서 보는 북한산이 반갑다. 양지바른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현등사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남근바위와 코끼리바위의 기묘한 형상도 구경하고 천년 고찰이라는 현등사 경내도 둘러본다. 마치 유명 관광지나 동물원 같은 곳을 유람하고 온 듯한 즐거움이 남는 운악산 산행이었다. 마지막 주말 산행을 만족스럽게 다녀온 것과 함께 2014년 한 해 동안의 등반이 안전하고 즐거웠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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