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 무렵이면 누적된 피로 탓인지 몸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말고사 채점과 성적 처리를 마무리 하자마자 어깨 통증이 찾아왔다. 무리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아프기 시작한 왼쪽 어깨를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통한 검진 결과 어깨 부위에 석회가 생겼다고 한다.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5일 정도 꾸준히 한 결과 이제는 어느 정도 통증이 사라졌다. 그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학회에 다녀온 출장길에서도 무리하지 않고 몸을 쉬어주기 위해 신경을 써야 했다. 평창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원주의 치악산에 오를 생각이었으나 그 계획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주말에 겨울산을 걷고 싶던 마음도 달랠 겸해서 어깨가 아픈 동안 집어든 책이 바로 산악 소설인 <시타델의 소년>이다. 역시나 몸이 아플 때는 독서가 제격이다.
미국 작가인 제임스 램지 울만(James Ramsey Ullman)이 지은 <Banner in the Sky>를 양철북 출판사에서 <시타델의 소년>이란 제목으로 번안해서 출간했다. 서두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소설은 마터호른을 최초로 등정한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시타델 산은 마터호른을 염두에 두고 지어낸 가상의 이름인 것이다. 스위스의 산골 마을인 쿠르탈에서 태어나고 자란 주인공인 소년 루디의 아버지는 알프스 최고의 산악가이드였지만 시타델 산에서 등반 중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 이후로 시타델은 알프스 유일의 미답봉이자 뛰어난 등반가들에게 조차도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는다. 마터호른의 초등자인 에드워드 윔퍼를 모델로 한 위대한 등반가 캡틴 존 윈터가 시타델 등정에 도전하기 위해 꾸르탈에 온 이후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타델의 소년>은 정말 재미 있게 읽히는 소설이다. 소설 속의 쿠르탈 마을은 마터호른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쩨르마트 마을의 옛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시타델 산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쩨르마트 주변을 트레킹 하면서 올려다 보았던 마터호른의 위용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산악가이드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에서는 후리종 로슈의 소설인 <수직의 도전자>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프랑스의 샤모니를 배경으로 한 명작이 <수직의 도전자>라면 <시타델의 소년>은 스위스의 쩨르마트를 무대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산악소설인 것이다. 한글판의 제목으로 선정한 <시타델의 소년>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개인적인 견해이다.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원작의 제목인 <Banner in the Sky>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몸이 편치 않아서 산에 갈 수 없는 주말이었지만 <시타델의 소년>을 읽는 동안 소설 속의 인물들과 함께 알프스의 명봉을 등반하고 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1. <시타델의 소년>은 정말 흥미진진한 산악소설이다.
2. 책을 읽는 동안 책상 위의 컴퓨터 바탕화면엔 마터호른 사진을 띄워 놓았다.
3. 작년 여름에 쩨르마트를 방문해서 찍은 마터호른 사진이다.
4. 알프스 최고의 미봉으로 꼽히는 마터호른은 가까이 갈수록 거대하고 더 높아 보인다.
5. 쩨르마트 마을은 소설 속의 무대인 쿠르탈 마을의 모델이 되었다.
6. 샤모니에 <수직의 도전자>가 있다면 쩨르마트엔 <시타델의 소년>이 있다.
7. 내 책상 앞에는 <시타델의 소년>의 배경인 마터호른과 <수직의 도전자>의 무대인 드류 주변 안내도가 붙어 있다.
8. <시타델의 소년> 영문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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