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후리종 로슈의 <수직의 도전자> 독후감

빌레이 2014. 8. 24. 19:50

알프스 산악인들의 불굴의 삶을 다룬 소설 <수직의 도전자>를 재미 있고 감명 깊게 읽었다. 몽블랑 아래의 산악 마을인 프랑스 샤모니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내게 특별한 즐거움을 전해주었다. 나는 샤모니에 세 차례 다녀왔다. 2002년에는 관광객으로 잠시 머물렀고, 2010년에는 혼자서 4박 5일 간의 일정으로 자유로운 트레킹을 즐겼었다. 2013년인 작년 여름에는 보름 동안 머물면서 알파인 등반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샤모니 인근의 지명과 몽블랑 산군의 침봉들을 비롯한 주변 지리가 눈에 선할 정도로 선명히 나의 뇌리에 남아 있다. <수직의 도전자>에 나오는 샤모니 시내의 풍경과 알프스의 산길, 등반 루트, 산장 등에 관한 묘사를 보면서 알프스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는 건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내가 다시 알프스 산정을 거닐고 있는 듯한 환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행복한 감흥을 전해주었다.

 

드류 침봉에서 조난사를 당한 산악 가이드인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등반 중에 아들인 삐에르 마저 30여 미터의 긴 추락으로 부상을 당하게 된다. 그 결과 등반가에게는 치명적인 현기증 증세를 심하게 앓게 되어 산에 다니기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미국인 손님의 등정 욕심 때문에 베테랑 가이드인 아버지가 조난 당했을 당시에 포터를 맡았던 조르즈는 고객을 끝까지 안전하게 귀환시키느라 정작 자신은 동상으로 두 발을 잃게 된다. 의족을 한 상태에서 다시 등반을 감행하는 조르즈의 열정에 고무되어 친구들과 연인인 아린느의 눈물겨운 사랑의 힘 덕택으로 주인공 삐에르는 현기증을 이기고 등반을 다시 할 수 있게 된다.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현기증 환자인 삐에르와 불구의 몸을 가진 조르즈가 자일파티를 이루어 매우 도전적인 베르트 침봉 등반을 감행하는 장면이다. 소설의 큰 줄거리는 이와 같이 요약할 수 있지만 <수직의 도전자>의 문학적 우수성은 극적인 스토리 전개 보다는 전문 등반가였던 저자의 수준 높은 상황 묘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은 1900년대 초반의 샤모니 계곡 사람들의 생활상을 느끼게 해준다. 알프스 산골의 때묻지 않은 산사람들의 청순한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잔잔한 평화가 깃드는 것 같다. 어릴적 읽었던 <알프스의 하이디>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삐에르와 아린느의 러브스토리와 목동들의 축제, 부상 당하고 상처 받은 친구들을 치유해주기 위한 친구들의 우정은 산과 자연을 통한 심신의 회복이 얼마나 건강한 것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작년의 알프스 등반 때 드류와 베르트 침봉을 여러 각도에서 조망해볼 기회가 있었다. 발므 고개를 트레킹 할 때 가이드 해주셨던 허 선생님으로부터 <수직의 도전자>의 무대가 된 곳이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도 난다. 여름의 말미에 <수직의 도전자>를 읽고 간접적으로나마 다시 알프스에 다녀온 듯한 상상을 할 수 있어서 시원하고 행복한 마음이다.

 

▲ <수직의 도전자>에서는 도전적인 알파인 등반을 펼치는 젊은이들의 패기를 엿볼 수 있다. 

 

▲ 암벽 장비인 퀵드로에 책을 꽂아보았다.

 

▲ 등반 장비들을 모아 놓은 곳인 나의 놀이터에서 주로 이 책을 읽었다.

 

▲ 주인공 삐에르는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드류 등반 중에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다.

 

▲ 삐에르와 조르즈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다시 등반을 감행할 수 있게 되는 장면은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적셔준다.

 

▲ 삐에르와 조르즈는 둘이서 자일파티를 이루어 아르장티에르 빙하를 통해 도전적인 베르트 침봉 등반에 나선다.

 

▲ 소설은 1900년대 초창기의 알파인 등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 소설 속의 샤모니 풍경은 목가적인 상상을 하게 만든다.

 

▲ 작년 여름의 발므 고개 트레킹 중간에 <수직의 도전자> 무대가 된 곳을 지나고 있다.

 

▲ 발므 고개를 내려와 몽블랑 정상이 보이는 오솔길을 따라 트레킹 중이다.

 

▲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된 드류와 베르트 침봉. 2010년의 트레킹 때 플로리아 산장에서 찍은 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