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고모집에 놀러가고 없는 토요일 밤에 아내와 둘이서 외출을 즐겼다.
애들이 없으면 신혼 같은 분위기 때문에 연애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설레임을 맛본다.
나와 아내는 같은 대학 동기동창이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사귀었으니 우리의 연애시절 추억은 고스란히 학교 주변에 남아있다.
모교가 집에서 가까운 탓에 그날도 우리의 추억이 서려있는 술집을 찾았다.
거의 모든 집의 상호가 변해있는 가운데 나의 단골집 두 곳은 아직까지 건재를 과시한다. 변치않는 맛을 지닌 때문이다.
<안암꼬치>라는 실내포장마차 같은 술집과 <삼성통닭>이란 맥주집이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이 두 집을 다녔으니 20년 넘은 단골인 셈이다. 이런 집들이 진짜로 고맙다.
지난 토요일엔 <안암꼬치>에서 아내는 소주를, 난 따뜻한 정종 한 잔을 마셨다.
안주는 삼치구이와 닭갈비 구이. 안주 맛은 여전히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부부 간의 대화란 뻔한 것이다. 아이들 얘기, 부모님 얘기, 집안 대소사 얘기, 살림 얘기 등등.
우리 부부도 이런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좀 더 재미 있는 얘기도 많이 나눈다.
책을 읽고 서로 느낀 바를 얘기하면 대화가 훨씬 재미있어진다.
좋아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같이 듣고나서 서로 토론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날도 우리는 연애시절로 돌아간 듯 젊은 대학생들 틈에 끼어 우리들의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들 대학 다닐 때보다 너무 화려하게 변해버린 학교 주변이 많이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밝고 깨끗한 찻집에서 돈 걱정 하지 않고 커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지금 우리 부부에게 주어진 윤택함 속에 스쳐 지나가는 젊은 날의 꾀죄죄한 우리들의 초상을 생각했다.
별로 한 것도 없이 주어진 삶에 충실하려고 몸부림 쳤을 뿐이다. 그것에 비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넘쳐난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사함이 가득한 주말 밤 아내와의 외출이 좋았다. 멋진 산행만큼이나...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계천 설경 (0) | 2009.05.28 |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과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가짐 (0) | 2009.05.28 |
2008년 산행 추억 (0) | 2009.05.28 |
2008년 세밑에 돌아보는 한 해 (0) | 2009.05.28 |
가을이 가는 길목에서 (0) | 2009.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