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산악소설 <자일파티>는 재미있다.
너무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오히려 등반 소설의 격을 떨어뜨린 것 같다는 느낌이다.
신문의 연재 소설로 시작된 두 권의 책이란 점을 생각하면 스토리 전개는 인위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치 인기 드라마의 스토리가 시청자들의 구미에 맞도록 수정되는 것처럼.
하지만 두 권의 책 속에 흐르는 산 사람들의 향기는 참 좋다.
도시코와 미사코 두 여류 등반가의 삶 속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의사이면서 산에 대한 끝없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도시코의 외향적인 열정.
조각가이면서 등산 중의 풍경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미사코의 내성적이고 진중한 삶의 자세.
언뜻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여인이 등산으로 하나되는 과정은 흐뭇하기까지 하다.
마터호른 북벽, 아이거 북벽, 그랑드조라스 북벽을 오르는 과정의 세밀한 묘사는
마치 정광식의 <영광의 북벽>, 헤르만 불의 <8000미터 위와 아래>를 보는 것 같다.
신혼여행지로 드류를 오르다 벼락을 맞아 죽는 미사코 부부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같은 시간 그랑드조라스 북벽을 정복하고 정상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도시코 부부의 모습은 너무 인위적이다.
박범신의 <촐라체>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산악소설의 감동은 실제 산행기인 논픽션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험준한 산을 오르는 그 자체가 충분히 드라마틱하고 비범한 것이기에 거기에 어떤 픽션이 가미된다는 것이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자일파티>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실패한 산행기라도 경험담을 진솔하게 적어나가는 글이 더욱 값지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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