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나의 책읽기는 더디다.
고전을 다시 읽고 호흡이 긴 책을 읽고 싶었다.
마음에 평안을 주고 유익한 책들은 많다.
존 뮤어의 <마운틴에세이>, 최성현의 <산에서 살다>, 신영복의 <나무야 나무야>, 원성의 <풍경> 등이 떠오른다.
이러한 책들은 천천히 아껴가며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요즘엔 최성현과 뮤어의 책을 틈틈히 본다.
고전으로는 제임스 힐턴의 <잃어버린 지평선>을 최근 읽었고,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다시 보았으며,
에밀 졸라의 <작품>,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책상 위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문학 작품을 대하는 건 언제나 즐겁기 때문에 내 마음 속 별들은 작가들이 주류를 이룬다.
최근 내가 좋아하던 작가들 중에 세 분이 연달아 돌아가셨다.
지난 오월부터 지금까지 박경리, 이청준, 솔제니친 선생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들의 지극한 팬이고 열렬한 독자이다. 그래서 슬프고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와
이청준 선생의 마지막 작품집이 된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를 구입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나의 허전함을 달랜다는 의미가 조금은 담겨있다.
소설가 박경리씨의 유고시집 겉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 글귀를 보고 나는 닥터지바고의 저자 파스쩨르나크를 생각했다.
그의 작품 <어느 시인의 죽음>에 나오는 시인의 모습이 박경리 선생이란 느낌이 들었다.
작년 11월에 발간된 이청준 선생의 생전 마지막 작품집 서문은 진솔하고 무게있다.
부음 이후에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때까지의 작가 생활을 차분히 정리하는 자세가
어느 정도 죽음을 예감한 사람 같았다. 조금은 송연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평론가 김윤식의 <아, 이청준>이란 발문도 재미있고 그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헌사이다.
박경리와 이청준 선생의 책 두 권도 아껴가며 찬찬히 읽어볼 요량이다.
박경리 선생의 시집 서문은 따님인 김영주씨가 썼다.
자식의 입장에서 선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음 글귀에 잘 나타나 있다.
" 언제나 당신에게 가장 엄격하셨으며 또 가장 자유인이기를
소망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여기 마지막 노래로 남았습니다."
내가 소망한 삶을 살아내신 위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전해준 순간이었다.
박경리 선생의 시집에 들어있는 시 한편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히말라야의 노새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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