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라디오를 듣다가 강신주란 철학자를 기억하게 되었다. 새벽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생활 속의 철학을 설명해주는 그의 목소리가 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일상 속에서 흔히 겪게 되는 문제를 동서양 철학은 물론이고 문학 작품까지 넘나들며 명쾌하게 분석해주는 철학자의 설명은 쉽게 이해되고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이후로 얼마 되지 않아 집에서 가까운 백화점 안의 서점에서 그의 저서인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구입했다. "지금은 자기 위로와 자기 최면이 아닌, 아파도 당당하게 상처를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책 뒷면 겉표지의 글귀부터가 내 마음을 끌었다.
나는 "힐링(healing)"이란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그리 탐탁치 않다.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채 현재의 아픔을 피해가는 방법으로 위안과 칭찬만이 해답인 것처럼 말하는 베스트 셀러 책이나 미디어 프로그램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진통제로 순간의 고통을 넘기는 처방이 아니라 혼돈스런 사회 속에서 병든 우리의 정신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철학적 고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품고 있었다. 철학자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내가 그동안 생각해오던 처방전을 제대로 받은 듯한 느낌을 전해준 책이다.
이 책은 젊은 시절에 읽었던 <소피의 세계>나 <철학이야기> 같은 책을 떠올리게 한다. 서양 철학과 문학에 심취해 있던 그 시절에 비교적 쉽고 재미 있게 철학자들의 어려운 사상을 설명해주던 책들이다. 그 이후로 철학 서적을 집중력 있게 읽었던 기억은 많지 않다. 이번에 만난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서양 철학 뿐만 아니라 동양 철학과 우리 나라의 최시형, 원효, 정약용 등의 사상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경지를 펼쳐보인다. 그런데도 전혀 산만하거나 분산된 느낌이 없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48 가지의 단편적인 얘기로 간결하게 풀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설파한 '영원회귀'의 개념을 이해함으로써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예전에 어렵게만 느껴지던 하이데거와 비트겐슈타인의 사상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약용의 위대함은 수양에서 실천으로의 전회에 있으며, 사치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냉철하게 분석한 좀바르트의 명쾌한 해석을 알게된 것도 큰 수확이다. 나치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여성 철학자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언급한 부분에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고 강조하는 대목은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전해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알찬 내용으로 가득찬 책을 정독함으로써 들뢰즈가 말한 "강렬한 독서법"을 실천한 것 같은 뿌듯함이 느껴진다.
1.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읽기 좋은 책이어서 오랜 기간 동안 차분히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2. 지난 여름의 미국 출장길에서도 이 책은 나와 같이 있었다. LA의 한 호텔방에서 새벽에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3.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쉽게 직면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그에 대한 해답을 주는 듯한 명쾌함이 이 책 속에 있다.
4. 중국의 철학자들과 비교해서 정약용 선생의 위대함을 설명해주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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