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느껴지는 흐린 날씨다. 아침 일곱 시에 우이동에서 모여 도선사 주차장으로 가는 택시에 오른다. 박교수님께서 타고 오신 택시에 합승한 것이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이른 아침에 등반할 수 있으니 차분하고 좋다. 고독길은 여러 번 왔지만 박교수님은 처음이다. 별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는 고독길이다. 우리 뒤의 한 팀은 자일도 없이 등반한다. 둘은 실력파 릿지꾼들로 보이지만 나머지 한 명의 초보자 뒤를 받치며 오르는 행위는 매우 위험해 보인다. 자신들이 아무리 안전하다 생각해도 단 한 번 삐끗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암벽 등반이다. 넷째 마디 출발점에서 뒤따라오던 팀에게 양보하고 우리는 천천히 안전하게 오른다.
고독길 선등은 두 번째이다. 지난 주 낭만길을 다녀와서 그런지 예전보다 무척 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기에 자세를 가다듬고 발동작을 확실히 연습하는 기회로 생각하고 오른다. 등반길 주변엔 구절초가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하게 피어있다. 팥배나무 열매도 빨갛게 익어서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아직 단풍은 이르지만 초록의 숲이 가을로 접어들고 있는 느낌은 완연하다. 시원한 바람이 등반을 즐겁게 해준다. 인수봉 정상에 오르기 직전부터 비가 내린다. 참기름 바위를 오를 즈음에 확성기 소리가 들린다. 비가 오고 있으니 암벽 등반을 중지하라는 안내 방송이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인수봉 정상의 바위 밑에서 비를 피하며 신발을 갈아신는다. 조금 있으니 정상이 소란스럽다. 어느 등산학교의 졸업등반이라며 여러 명의 아주머니 부대가 우리 주위에서 왁자지껄이다. 정상에서의 여유를 만끽할 환경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 점심도 내려가서 먹기로 하고 하산길에 나선다. 오락가락하는 비 속에서 조심스런 마음가짐으로 하강을 한다. 삼십 미터씩 두 번 나누어 하강한다. 인수봉 남면 벽에 붙은 클라이머들을 구경하면서 과일과 행동식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백운산장으로 내려와 위문을 지나 대성문까지 가시겠다는 박교수님과 헤어진다. 나와 은경이는 중학교 동창회에 가기 위해 우이동으로 하산한다. 많은 사람들로 소란스런 등로를 벗어나기 위해 하루재에서 영봉으로 향한다. 상장능선을 타고 육모정 고개로 내려오는 길은 상대적으로 한산해서 좋다. 모처럼 가을의 시원함을 느낀 상쾌한 등반이었다.
1. 팥배나무 열매가 앙증맞게 매달린 풍경은 이미 가을이 무르익고 있음을 보여준다.
2. 흐린 가을 하늘 아래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평소 주말과 달리 인수봉 주위가 조용하다.
3. 취나드 A길과 B길의 세로 크랙이 선명하여 오르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지만 아직은 참아야 한다.
4. 인수봉에 이르는 가장 쉬운 길이라지만 고독길에도 위험 요소는 곳곳에 산재한다. 고독길 1피치도 조심해야할 구간이다.
5. 첫 번째 피치 확보점은 듬직하고 멋진 소나무 한 그루이다.
6. 두 번째 피치는 홀드가 양호한 구간이다.
7. 등로 주위엔 구절초가 만발해 있다. 깨끗한 꽃송이와 싱싱한 잎과 줄기가 예쁘다.
8. 네 번째 마디의 세로 크랙도 홀드가 좋아서 발 재밍만 정확히 하면 쉬운 구간이다.
9. 귀바위 밑을 지나는 40 미터 직벽 구간도 홀드가 양호하여 등반이 즐겁다.
10. 귀바위 밑을 통과하면 통천문 같은 바위 틈이 기다리고 있다.
11. 고독길이 처음인 박교수님께서 귀바위 밑을 등반하고 있다.
12. 이 곳 침니를 통과하면 영자크랙이 기다리고 있다.
13. 빨갛게 익은 팥배나무 열매가 밭에서 나는 팥을 닮았다.
14. 인수봉 남면 벽에는 평소의 주말처럼 많은 클라이머들이 붙어있다.
15. 상장능선 길가에도 구절초가 누가 일부러 심어 놓은 듯이 탐스럽게 만발해 있다.
16. 상장능선으로 하산하다 우측을 바라보니 꿈길 릿지의 마지막 직벽이 우람하게 버티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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