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이어진 주말이다. 고향집에 내려갈 때는 차가 많이 막혔다. 정체를 피하기 위해 세종시를 관통하는 국도와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탔다. 함양부터는 88고속도로를 따라서 처가가 있는 광주에 도착했다. 먼 길을 돌아갔지만 도로에서 거북이 걸음 하는 것보다는 괜찮았다. 다행히 추석 다음 날 아침 돌아오는 길은 정체 현상이 없었다. 토요일 등반을 위해 유집사님과 박교수님, 은경이에게 전화해본다. 모두가 오케이다. 정신이는 통화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처가에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인수봉을 갈까 했으나 비교적 한적하고 두 분이 가보지 않은 도봉산 낭만길을 목적지로 정한다. 토요일 아침 8시 정각에 도봉산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도봉산역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유집사님을 만난다. 버스 한 대 간격으로 하차해서 만난 것이다. 포돌이 광장 앞에서 은경이도 만난다. 박교수님은 이미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모두들 약속 시간 하나는 철저하게 지킨다. 인수릿지에서 네 사람이 자일파티를 이룬 때가 6월 22일이다. 그 이후로 처음 발을 맞추는 것이니 근 3 개월 만이다. 지독히도 무더웠던 여름을 잘 견뎌왔으니 이제는 상큼한 가을 날씨에 열심히 즐길 일만 남았다. 만월암으로 향하는 어프로치는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아직은 날씨가 습한 탓인지 땀이 비오듯 솟는다. 힘겨운 돌계단 길을 올라 만월암 위의 너럭바위에 대자로 누워본다. 등이 시원하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이다.
만장봉으로 향하는 낭만길 릿지는 그 이름만큼이나 풍광이 뛰어나다. 자운봉과 선인봉 사이를 가르는 능선을 오르는 동안 도봉산의 잘생긴 바위 군상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한여름의 대둔산과 월출산 등반 이후로 한 달 이상 바위에 붙지 않았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첫째 마디에 선등으로 발을 내딛는다. 아주 쉬운 구간이지만 조심해서 오른다. 둘째 마디는 중간 이후의 손 홀드가 애매하다. 슬랩을 오른다는 생각으로 발을 과감하게 내딛으니 괜찮다. 유집사님, 박교수님, 은경이 순서로 등반하는데, 후등자들도 모두 그 부분에서 잠깐 망설이는 몸짓을 보인다. 쉬운 침니 구간인 셋째 마디를 올라선다. 비로소 전망이 열린다. 구름 낀 날씨다. 우측으로 자운봉에서 우람하게 뻗어내린 배추흰나비길 릿지가 직벽처럼 보인다.
넷째 마디는 푸석바위로 이루어진 크랙을 올라선 이후부터 시작된 좁은 침니를 올라가는 구간이 그리 녹녹치 않다. 후등으로 오를 때는 침니 양쪽 벽에 발을 버티고 올라서는 스태밍 자세가 안정적이다. 하지만 선등하는 동안엔 가급적 안전하게 돌파하자는 생각이 앞선다. 침니 중간에서 배낭을 벗어 앞으로 밀면서 끝부분까지 오른다. 큰 소나무에 확보하고 '완료'를 외친 후 빌레이 보는 은경이를 내려다본다. 약간 놀래는 눈치다. 침니 중간에 있을줄 알았는데 어느새 확보점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예전에 없던 볼트가 박혀있다. 그 볼트를 발견했었더라면 좀 더 멋지게 올라올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후등자들은 모두 스태밍 자세로 멋지게 침니를 빠져나온다.
클라이밍 다운으로 넷째 마디 확보점을 내려선다. 낭만길의 크럭스 구간인 직상 크랙이 버티고 있다. 항상 축축해서 매우 미끄럽고 홀드도 양호하지 않은 구간이다. 전에 후등으로 오를 때에도 애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안전하게 진행하자는 생각에 오솔길을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여 우회로를 찾아본다. 십여 미터 우측에 능선으로 향하는 확실한 우회로가 보인다. 여기도 이끼가 보이는 물길이지만 홀드는 양호하다. 별 어려움 없이 다섯째 마디를 끝내고 다시 능선 상에서 등반을 이어간다. 뜀바위가 있는 여섯째 마디와 짧은 실크랙 슬랩 구간인 일곱째 마디는 손쉽게 통과한다. 디에드르 형태의 직벽이 가로막고 있는 여덟째 마디 출발점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선인봉에서 올라오는 등반자들이 사용하는 쌍볼트에 확보한다.
여덟째 마디에서 좌측의 좁은 침니를 통과하는 코스를 택한다. 우측의 크랙을 타고 오른 적이 있으나 캠 설치가 용이하지 않은 크랙이라서 선등자에게 안전성이 떨어지는 코스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좁은 침니 중간에 박혀있는 바위에 슬링이 걸쳐져 있다. 이것을 잡고 올라서야 하는데 이번에도 배낭이 말썽이다. 할 수 없이 배낭을 벗어서 슬링에 걸쳐놓고 몸만 빠져나온다. 두 개의 캠으로 확보점을 만든 후 유집사님을 올라오게 한다. 침니 중간에서 내 배낭과 집사님의 배낭을 차례로 끌어 올린다. 다음으로 유집사님이 가벼워진 몸으로 침니 사이에 걸쳐친 바위덩이를 넘어선다. 박교수님과 은경이의 배낭은 침니 초입에서 먼저 끌어올린 후 몸만 올라오게 하니 한결 쉽다.
마지막 아홉째 마디는 디에드르 형태의 크랙이 있는 구간으로 슬랩을 조심해서 오르니 미끌리지 않는다. 네 사람 모두 안전하게 등반을 마무리하고 만장봉 정상에 도착한다. 일반 등산객으로 붐비는 신선대 정상과 포대능선의 Y계곡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은 것 같다. 우리 네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는 만장봉 정상에서 호젓함을 만끽하며 점심을 먹는다. 오랜만의 바위라서 긴장했었는데 예상보다는 안전하고 어렵지 않게 올랐다는 생각이다. 등반에 임하기 전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준비를 많이하면 등반하는 동안에 여유가 생겨서 즐거운 등반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30 미터와 25 미터 두 번으로 이루어진 하강까지 안전하게 마치고 장비를 정리한다. 산객들로 붐비는 하산길이 복잡해도 만족스런 등반을 즐긴 후의 너그러워진 마음 때문인지 신경쓰이지 않는다. 도봉산 입구의 왁자지껄한 음식점에서 막걸리 한 사발로 뒷풀이를 하고 장비점을 기웃거리며 배회하는 것도 오랜만에 즐겨보는 놀이다. 추석연휴를 잘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에너지 충전을 마친 것 같은 기분이다.
1. 넷째 마디를 선등 중이다. 이 구간은 움직이는 푸석바위라서 캠 설치에 신중해야 한다.
2. 첫째 마디는 아주 쉬운 구간이지만 천천히 오르면서 워밍업 하는 기분을 즐긴다.
3. 둘째 마디는 크랙의 홀드가 양호하지만 후반부가 약간 애매하다.
4. 둘째 마디의 손 홀드가 양호하지 않은 구간을 박교수님이 등반 중이다.
5. 넷째 마디 전경. 위로 보이는 큰 소나무가 확보지점이다.
6. 넷째 마디 초입의 쉬운 구간을 오르고 있다.
7. 넷째 마디는 이 곳에서 한 번 끊어서 등반하는 게 안전하다.
8. 넷째 마디 침니 구간을 스태밍 자세로 올라서고 있다.
9. 넷째 마디의 확실한 확보점인 큰 소나무에서 한 컷.
10. 낭만길에는 침니 구간이 유난히 많다.
11. 직상 크랙으로 이루어진 다섯째 마디는 우회한다.
12. 다섯째 마디의 우회 루트는 이끼가 많지만 비교적 홀드가 양호하다.
13. 여덟째 마디 초입의 직벽 앞에서 잠시 쉬어간다.
14. 정상 직전의 마지막 구간을 박교수님이 오르고 있다.
15. 마지막 마디 확보점에서 한 컷.
16. 선인봉 쪽의 하강용 피톤이 설치되어 있는 만장봉 정상에서.
17. 남자 셋이서 정상 기념 사진.
18. 하강 첫째 마디에서 30 미터 현수 하강 중인 박교수님.
19. 두 번째 25 미터 길이를 하강 중인 유집사님.
20. 추석연휴가 이어진 주말이라 그런지 도봉산엔 그 어느 때보다 등산객들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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