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많이 읽기 시작한 때는 대학 입학 이후이다. 그 이전엔 책 읽기를 별로 즐겨하지 않았다.
정광식의 <아이거 북벽>을 읽으면서 새삼 떠오른 생각은 나의 독서 방향이 그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이십대 초반엔 소설을 위주로 한 고전문학이나 현대 한국소설, 그리고 철학 서적을 탐독했다.
수학이 직업으로 자리잡은 이십대 후반엔 전공관련 책과 교양과학 서적들을 섭렵했었다.
문학에 대한 흥미는 여전했으나 이 시기엔 소설보다는 시가 더 좋았다. 간결하고 짧다는 이유로.
삼십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의 독서 스타일은 잡식성에 가깝다.
최근 몇 년 동안 문학에 대한 관심은 여전한데 등산이나 여행 관련 서적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설이나 시 같은 비사실적인 글보다는 논문 성격의 사실적이고 유익한 글이 더 좋아진다.
그래서 근자에 읽은 책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주로 산서나 위인전기가 주류를 이룬다.
<아이거 북벽>은 등반일지 형식의 사실적인 글이다. 사람이 지어낸 얘기가 아닌 사람이 경험한 얘기다.
그렇지만 지난 주에 읽었던 소설 <촐라체>보다 오히려 더욱 감동적이다.
소설 <촐라체>의 드라마틱한 장면들은 사실적이지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박범신의 작품도 좋았지만, 모티브를 제공한 박정헌과 최강식의 등반일지가 여러 면에서 더욱 가치있을 것이다.
소설은 사람이 만들어낸 얘기라면, 사실을 기록한 글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중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울까?
비교를 한다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지만, 가치와 감동면에서 정광식의 <아이거 북벽>은 박범신의 <촐라체>를 능가한다.
십여년 전에 <영광의 북벽>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것이 다시 멋지게 부활한 책이 바로 <아이거 북벽>이다.
헤르만 불과 임덕용의 책만큼 나의 뇌리에 오래 남을 것 같은 느낌이다. 참 좋은 책이다.
이런 책들이 진짜로 좋은 책이다. 경험하기 힘든 내용을 사실적으로 경험한 사람의 지식과 감정이 살아서 꿈틀대는.
나이 들어갈수록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가 좋아진다.
감정에 이끌릴 때는 드라마도 좋지만, 지식을 전해주고 실질적인 정보가 있는 다큐가 더욱 좋다.
소설이나 드라마가 라면같은 존재라면, 등반일지나 다큐는 매일 먹는 밥상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다.
클라이네샤이데크에서 겨울에 올려다보았던 아이거가 읽는 내내 눈에 선했던 좋은 책 <아이거 북벽>,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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