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박범신의 소설 <촐라체>

빌레이 2009. 5. 28. 16:40

소설 <촐라체>는 산악소설이다. 저자는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산악소설이 맞다.

아마도 한국 소설 중에서 등반 전문 용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의 유명 작가 작품 중에 이렇게 밀도 있는 등반 소설은 보지 못했다.

단편소설로 황석영의 데뷔작인 <입석부근> 정도가 떠오르지만 <촐라체>만큼 전문적이진 않다.

 

촐라체는 전세계 클라이머들이 오르고 싶어하는 꿈의 암빙벽으로 에베레스트 산군에 있는 6440미터의 봉우리다.

머메리의 등로주의에 입각한 순수 알피니즘을 촐라체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바로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아버지가 다른 형제인 박상민과 하영교가 산을 오르고 "나"가 베이스 캠프를 지키는 삼각 구조의 산행이다.

소설 속의 "나"는 다분히 작가인 박범신의 모습이 투영된 캐릭터이다.

 

<촐라체>는 그간 읽었던 산서 중에서 '죽음의 지대'와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란 책을 연상시킨다.

산악 영화인 '버티컬리미트(vertical limit)'와 '케이투(K2)'의 장면들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 모두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반면에 소설 <촐라체>는 우리 것이다.

모국어로 집필된, 그래서 심리 묘사가 지극히 한국적인 소중한 우리의 문학 작품이란 것이 자랑스럽다.

 

박범신은 내가 대학 다닐 때인 1980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던 기라성 같은 작가들 중의 한 명이다.

이 시기의 소설은 리얼리티에 기반을 둔 탄탄한 구성의 좋은 작품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촐라체>를 읽고 난 후 느낀 첫 감상은 반가움이다. 지금의 시점에서도 이러한 작품이 가능하구나 하는.

이러한 반가움은 박범신 자신의 철저한 체험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또 하나, <촐라체>로부터 얻은 생각은 시간은 곡선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시간은 일 초 일 초 묵묵히 앞으로만 흐르는 직선 운동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놓여진 위치 등에 따라서 더디 가기도 하고 빨리 가기도 하며,

춤추는 길과 괴로운 길, 고독한 길과 함께 가는 길로 형성된 복잡 다단한 곡선 운동일 거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소설 속에서 여러 번 반복되어 나타났다.

헤르만 불의 유명한 사진, 산에 오르기 전과 후의 모습에 나이 차가 극명하게 느껴지던 그 그림이 연상된다.

하루를 살아도 남들이 평생 동안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룰 수 있는 에너지가 우리 내부엔 자리하고 있다.

그 에너지를 밖으로 끌어내어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작가 서문에 있는 다음의 글귀가 이 순간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유한한 인생에서 참으로 위로가 되는 것은, 욕망에 따른 성취가 아니라

이룰 수 없을지라도 가슴 속에 촐라체 하나 품고 사는 일이 아니겠는가."

나의 '촐라체'는 무엇이고, 그 촐라체는 욕망으로부터 구별된 맑고 순수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