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에 내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문학가인 박경리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기 때문에 곧바로 슬픔이 몰려오지는 않았다.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을 뿐.
소설가 신경숙과 공지영의 추모글을 읽고나니 불현듯 슬픔이 밀려온다.
그 분의 죽음이 내게 현실화 되는 순간이다. 마음 속의 별 하나가 떨어졌다.
문득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부숴진다"란 박인환의 싯구가 떠오른다.
젊은 시절 박경리의 작품은 거의 모두 읽었다. 선생의 작품은 치열하고 스케일이 컸으며, 완벽한 구성을 갖추었다.
그녀의 많은 책을 읽은 후에도 그녀가 여류 소설가란 것을 감지하지 못했었다.
<시장과 전장>, <김약국의 딸들>, <파시>, <토지> 등을 비롯한 작품들은 국보급 문화재와도 같은 무게를 지녔다.
김동인, 김동리, 황순원을 잇는 전후 한국문학의 계승자로 <광장>의 최인훈과 박경리를 꼽는다.
이들을 불씨로 하여 한국문학은 제3세대에 들어 화려한 꽃을 피운다.
황석영, 이문열, 이청준, 조세희, 박완서, 한승원, 문순태, 김주영, 이문구, 박범신, 한수산, .....
하지만 내게 있어서 박경리 선생은 이들 중 한 명이 아니라 한국 현대 문학사에 우뚝 서 있는 큰 산으로 보인다.
박경리 선생의 작품과 삶 속에서 나는 정말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내 문학에 타협은 없다... 너무나 강렬했던 그녀의 의지...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순수하고 부끄럼 많은 사람이었다.
한국적 한을 몸소 체험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 끊임없이 이어진 삶에의 열망... 그 속에서 피어난 생명 사상...
내 삶에 가장 큰 힘과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셨던 분.
여류 소설가들이 패시미즘 문학으로 여권 신장을 외칠 때,
조용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여권 남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던 분.
지금도 내 가슴에 좌우명 처럼 각인되어 있는 토지 서문의 말씀.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상할 것인가".
박경리 다음으로 훌륭한 소설가는 도스토예프스키 정도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던 그 분.
언젠가 꼭 한 번 보고 싶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선생님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어본다. 천국 가서 뵈올 때, 이승에서 못 나눈 말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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