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의 마지막 금요일 아침,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성금요일로 지키는 날이기도 하다. 맑은 날씨지만 아침 바람은 차가운 편이다. 박교수님, 유집사님, 친구 은경, 나, 이렇게 네 사람이 우이동에 모였다. 숨은벽과 만경대 릿지를 등반하기 위해서다. 유집사님은 이 주 전에 원효와 염초 릿지를 같이 등반했던 여세를 몰아 북한산 3대 릿지를 섭렵하기 위해 감기를 무릅쓰고 나오셨다. 박교수님은 예전에도 함께 릿지 등반한 경험이 있지만 꽤 오랜만에 합류하셨다. 박교수님과 유집사님은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주차봉사를 하시는 분들이라 서로 잘 알고 계시다. 안전한 등반을 즐기기 위해 친구인 은경이가 나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휴가를 내어 합류해주었다. 결과적으로 등반에서 가장 이상적이라는 네 명으로 이루어진 자일파티를 구성하게 되었다.
숨은벽 등반을 위해선 구파발에서 의정부 방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밤골부터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평일의 혼잡한 출퇴근 경로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조금 멀지만 우이동에서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아홉 시 정각에 우이동 미니스톱을 출발하여 육모정 고개 방향으로 산에 오른다. 숨은벽 대슬랩 초입까지는 인수봉 언저리를 돌고돌아 꽤 긴 거리를 걷는다. 군데군데 음지엔 아직도 잔설과 고드름이 남아있다. 추운 기온은 아니지만 바람이 세찬 편이라 어프로치를 길게 하여 바위에 붙는 시간을 늦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슬랩 출발 지점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가야할 루트를 올려다본다. 해를 등지고 북향으로 뻗어있는 숨은벽 능선엔 스산한 느낌의 바람이 일렁인다. 쌀쌀한 느낌 때문인지 평소보다 슬랩의 경사가 높게 느껴진다. 은경이에게 슬쩍 선등 의향을 물어본다. 최근의 거듭된 야근으로 몸 상태에 자신이 없는지 곧바로 거절한다. 예전에도 자주 올라본 곳이니 별 문제 없으리란 생각과 은경이의 확보를 믿자는 마음으로 힘차게 출발한다. 막상 등반을 시작하니 서서히 자신감이 생긴다. 천천히 바위 표면의 돌기를 느끼듯 릿지화를 내딛는다. 어느새 오십 미터의 슬랩 등반을 완료한다. 박교수님과 유집사님은 슈퍼베이직을 이용하여 등반한다. 볼트에서 앞뒤 자일을 바꾸는 것도 두 분 모두 베테랑처럼 잘 하신다.
항상 첫 피치의 긴장감은 있게 마련이다. 2 피치부터는 햇빛을 받으며 등반할 수 있으니 좋다. 고래등 앞에서 자일을 사용하지 않는 네 명의 릿지꾼 일행이 우리를 추월한다. 바윗길에서 추월할 때는 정중히 예의를 갖추어 양해를 구하는 등반 문화가 아쉽다. 우리는 등반 속도보다는 안전하게 즐기는 것이 목적이므로 게의치 않고 안자일렌 하면서 등반을 이어나간다. 자일파티 모두가 물흐르듯 등반에 임하니 순간순간이 즐겁다. 내가 선등하는 동안 은경이가 뒤에서 빌레이를 보고 박교수님은 자일 유통을 돕는다. 그동안 유집사님은 등반모습을 사진에 담고 계신다. 네 명 모두가 각자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으니 등반이 즐거울 수 밖에 없다. 바람이 불어 등반은 조금 힘들어도 시야는 상대적으로 좋으니 멋진 경치 즐기며 안전하게 숨은벽 릿지 등반을 완료한다.
숨은벽 정상 너머의 양지바른 곳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시간이 정답고 여유롭다. 달콤한 휴식 시간을 뒤로 하고 백운대 대슬랩 밑을 돌아 위문을 거쳐 만경대 정상에 오른다. 그 이름에 걸맞게 만경대는 항상 시원한 조망을 선사한다. 전반적으로 하강과 트래버스 코스가 많은 만경대 릿지 등반은 숨은벽 릿지와는 또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만경대 정상부의 자일 하강과 트래버스 구간을 시작으로 뜀바위를 무사히 거쳐서 사랑바위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피아노바위 트래버스까지 안전하게 마친 후 마지막 클라이밍 다운을 하는데 멀리서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온다. 해질녘 산사에서 흘러나오는 종소리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아늑하게 느껴지는 그 종소리만큼이나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등반을 종료한다.
자일파티를 이루어 하나의 끈으로 묶인채 위험이 상존하는 바윗길에서 하루를 같이 보낸다는 건 대단한 인연이다. 오늘 등반을 같이 한 우리 네 명의 자일파티는 정말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어느 때보다 등반이 즐거웠고 만족스러웠다. 아침 아홉 시에 시작된 등반은 도선사 경내에 내려서서 산행을 마무리 하니 시계는 어느덧 여섯 시 반을 넘겼다. 아홉 시간 가까이 산에서 흡족한 등반을 즐기면서 보냈다는 것이 뿌듯하고 보람차다. 시종일관 조화롭게 등반에 임해주신 박교수님과 유집사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일렁인다. 등반을 함께 하면 언제나 즐거운 친구인 은경이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편안한 등반이 되었다. 한 팀을 이룬 친구와 동료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1. 숨은벽 릿지의 하일라이트인 고래등 구간에서 박교수님이 등반 중이다.
2. 숨은벽 릿지 등반의 출발점인 오십 미터 대슬랩을 오르고 계시는 유집사님.
3. 박교수님과 유집사님께서 숨은벽 대슬랩을 등반 중이다. 슈퍼베이직을 착용한 첫 등반인데 유연하게 잘 오르신다.
4. 숨은벽 릿지의 두 번째 마디인 브이자 형 슬랩 구간 등반을 완료한 친구 은경이.
5. 고래등 위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계시는 유집사님. 베테랑 바위꾼 같은 여유로움.
6. 숨은벽 릿지 등반의 마지막 마디인 엄지바위를 등반하고 계시는 박교수님과 유집사님.
7. 숨은벽 릿지 등반을 완료한 후의 뿌듯함으로 인증샷 한 컷.
8. 만경대 정상에서의 조망은 언제나 멋지다.
9. 만경대 릿지 등반은 전반적으로 트래버스와 하강 구간이 많은 루트이다.
10. 만경대 릿지 등반 초입의 하강 구간.
11. 만경대 릿지에도 이제는 적절한 곳에 볼트가 설치되어 안전한 등반을 즐길 수 있다.
12. 뜀바위로 향하는 곳의 음지엔 아직도 한겨울처럼 얼음이 얼어있다.
13. 짧은 클라이밍 다운 구간에선 몸으로 빌레이를 보면서 안전을 확보한다.
14. 등반하다 돌아보면 우리가 트래버스한 만경대의 낙타봉 언저리가 선명하다.
15. 박교수님, 유집사님과 함께 만경대 정상에서의 인증샷.
'암빙벽등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산 암장에서 한가롭게 놀다 - 2013년 3월 30일 (0) | 2013.03.31 |
---|---|
북한산 숨은벽과 만경대 릿지 등반 모습 - 2013년 3월 29일 (0) | 2013.03.30 |
원효-염초 릿지 등반 (2013년 3월 16일) (0) | 2013.03.16 |
화천 딴산 빙장에서의 빙벽 등반 - 2013년 1월 26일 (0) | 2013.01.27 |
은류폭포 빙벽 등반 - 2013년 1월 17일 (0) | 2013.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