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의 유럽 방랑>은 꽤 오래 전부터 조금씩 읽어오던 책이다. 위고는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항거하다 추방당한 이후 19년 동안의 방랑길에 오른다. 오랜 세월 동안 프랑스, 독일, 스페인, 벨기에, 스위스, 룩셈부르그 등을 여행하면서 위고는 아내와 딸, 친구 등에게 편지를 보낸다. 여행지에 대한 인상을 적은 글과 함께 그 곳에 대한 스케치 그림들도 남긴다. 프랑스에서는 2002년도에 위고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서 이러한 여행기와 스케치 작품들을 모아 책으로 출판한다. 이 책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 바로 <빅토르 위고의 유럽 방랑>이다.
이 책은 유럽 곳곳을 여행한 경험이 많은 내게는 특별한 재미를 가져다 주었다. 책 속의 여행지 중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곳도 있고 가본 곳도 있다. 가보지 못한 곳은 위고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그 곳의 모습과 당시의 사회상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가본 곳에 대한 위고의 여행기는 더욱 더 큰 재미가 느껴졌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가 바라보는 시각을 대하면서 내가 느꼈던 인상을 떠올려 보는 것은 시공을 초월해서 저자와 대화하는 듯한 달콤한 상상이었다. 위고의 여행기와 함께 실린 그의 스케치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도 아주 즐거운 일이다. 그림만 전문으로 그렸다고 해도 위고는 유명한 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대부분인 책의 초반부는 띠엄띠엄 읽혔다. 그러나 오늘 오후부터 읽기 시작한 부분부터는 내게 익숙한 부분이 많아서 금방 읽어나갈 수 있었다. 전에 살았던 벨기에에 대한 얘기와 최근에 다시 다녀온 독일 얘기는 특별히 더 큰 재미와 감동을 가져다 주었다. 연구년을 보냈던 벨기에의 대학도시인 루벤과 플랑드르 지방에 대한 여행기는 고향에 관한 얘기처럼 아련한 향수마저 느끼게 해주었다. 중세의 지명을 그대로 번역하여 현대 지명과의 연관성을 거의 설명해주지 않은 점은 한글 번역본의 아쉬운 대목이다. 예를 들면, 책에서 "앙베르"로 표현된 곳이 현재는 벨기에 제2의 도시인 앤트워프란 사실을 벨기에에 대해 매우 익숙한 나도 한참 후에야 유추해낼 수 있었다.
루벤 시청에 대한 위고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루뱅은 분지의 중심부에 위치한 매우 완벽하고 매력적인 도시였소. 감탄할 정도로 훌륭한 시청은 거대한 성골함 모양을 하고 있었다오. 이 건물은 15세기의 위대한 걸작으로 회색빛이 도는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소". 라인강을 칭송했던 위고는 그 곳을 여행하면서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에도 종종 이런 말을 했었기 때문에 자네는 내가 강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을 걸세. 강은 물건들만 운반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생각도 실어 나른다네".
프랑스 작가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가가 바로 빅토르 위고일 것이다. 대하소설인 <레 미제라블>은 완독하지 않았을지라도 장발장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들었고 영화나 뮤지컬로 한 번쯤은 감상했을 것이다. 유명한 영화 <노틀담의 꼽추>도 위고의 원작소설 <파리의 노틀담>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유럽에서는 독일의 음악, 프랑스의 문학이라는 말이 있다. 문학적 깊이가 있는 프랑스에서 대문호로 칭송받는 빅토르 위고가 있기까지는 이십여 년 가까운 야인 생활이 있었다. 정약용 선생이 위대한 학자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도 십팔 년 동안 유배지에서 겪은 힘든 시기에 이루어진 업적 때문이다. 좋은 것은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여행기를 읽었는데 위고의 자서전를 읽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편지 형식의 글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사적인 내용들에서 위고의 삶을 엿보는 듯한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말연시에 보았던 <루쉰전>에서 느낀 것처럼 작가의 삶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그의 작품에서 새로운 면을 깨닫게 되는 또하나의 즐거움을 주는 듯하다. 위고의 스케치 작품들을 보고나니 여행이나 산에 다니면서 카메라만 가지고 다닐 것이 아니라 간단한 스케치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더욱 깊어졌다. 이 생각은 박재동 화백과 러스킨의 책을 읽은 이후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여행용 스케치북까지 준비해 놓았는데 아직까지 실천해보지 못 하고 있다. 올해는 꼭 해보고 싶은 일 중의 하나이다.
1. 이 책은 2002년에 프랑스에서 위고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된 책을 번역한 것이다.
2. 책에는 위고의 스케치 작품이 많이 실려 있는데 정말 잘 그렸다.
3. 위고는 특별히 성과 성당 등의 문화재에 대한 인상을 여행기와 스케치에 많이 담았다.
4. 책의 안쪽 표지이다.
5. 위고가 극찬했던 루벤시청. 내게는 고향처럼 익숙한 곳이다. 이 사진은 2010년 연구년 때에 찍은 것.
6. 위대한 화가 루벤스의 도시인 벨기에 앤트워프(안트베르펜)를 묘사한 그림인 듯.
7. 라인강 여행에서 보았던 고양이성을 위고가 스케치한 것.
8. 지난 12월의 독일 여행 때 로렐라이 언덕에서 바라본 고양이성. 아마도 위 그림은 아랫마을에서 올려다본 구도인 듯.
9. 라인강을 특별히 사랑했던 위고가 라인강변을 여행하며 남긴 스케치 작품들.
10. 룩셈부르그의 쉥겐에서 그린 스케치. 쉥겐은 유럽의 국경을 없앤 쉥겐조약으로 유명한 곳.
11. 위 그림은 아마도 이 곳을 스케치했을 듯.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것.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팔공산 춘설에 관한 단상 - 2013년 4월 20일 (0) | 2013.04.22 |
---|---|
소사나무 분재 (0) | 2013.03.26 |
독일의 건축물 (0) | 2013.01.10 |
한국영화 <타워>와 할리우드 영화 <레미제라불>을 감상하고 (0) | 2013.01.06 |
<루쉰전>을 읽고 (0) | 2013.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