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늦가을 문경새재길을 거닐며

빌레이 2012. 11. 18. 20:31

내가 보는 좋은 직장의 전형은 간단하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할 때부터 직장에서의 일이 기대되어 빨리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분명 좋은 직장이다. 급여나 의무감에 얽메어 억지로 출근하는 일이 잦아진다면 자신에게 좋은 직장은 아닐 것이다. 주어진 일이 소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일상이 즐겁다면 최고의 직장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에서 그런 직장 생활을 영위하는 이들은 드물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일어나는 최근의 상황 때문인지 출근이 즐겁지 않은 날들이 많아졌다.

 

강의가 없는 금요일, 생각도 정리할 겸 아내와 함께 문경새재길을 찾아간다. 제1관문인 주흘관에서 제2관문인 조곡관을 거쳐 제3관문인 조령관에 이르는 6.5 킬로미터의 드넓은 흙길은 조용히 거닐며 사색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매우 완만한 오르막길이어서 평지 같이 느껴지는 길을 걸으며 조곡관에 다다르면 제법 시원한 조망도 즐길 수 있다. 올라가는 길 왼쪽 능선은 이화령에서 조령산으로 이어진 백두대간길이다. 오른쪽 산줄기는 주흘산과 부봉이 연결된 능선으로 몇 년 전 가을에 탔던 기억이 생생하다.

 

제3관문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돌아오는 길은 내리막길이어서 힘들지 않다. 자연스레 아내와의 대화도 잦아진다. 교육기관인 대학이 교수에게 연구와 강의 능력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학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작금의 일괄적 평가체계는 순수학문 전공자들에게 상당한 무력감을 안겨준다. 교육과 연구라는 기본에 충실하고 구성원들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는 요원하다. 별로 필요치 않은 절차와 요식행위만 많아지는 것 같다. 에너지 낭비가 심하면 제대로된 동력을 얻기가 힘들어지는 법이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참된 선생님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는 것 같은 현실이 안타깝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가며 걸었다는 문경새재길이다.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사서삼경 속의 유교적 사상이나 문사철의 수준으로 관료를 뽑던 조선시대는 대학에서도 다분히 현실적인 테크닉이나 실무적인 능력만을 가르치는 요즘과 많이 다르다. 온고지신의 현학적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금의 대학 교육은 균형감을 많이 상실한 것 같다. 문명은 크게 발전했지만 인간의 정신세계는 그 발전 속도에 한참 못 미치는 듯하다. 외부의 어지러운 상황이 일거에 정리될 수는 없는 법이다. 나 자신부터 다시 기본에 충실하고 식어버린 열정을 다시 불태워야할 때이다.

 

1. 제3관문인 조령관의 뒷모습. 담장 위에 쌓인 눈은 이번 만추에 처음보는 눈이다.

 

2. 제1관문 오른쪽으로 이어진 성벽은 주흘산으로 향한다.

 

3. 제1관문인 주흘관 밖은 드넓은 광장이다.

 

4. 주흘관 옆을 흐르는 계곡엔 시원스런 아치교가 놓였다.

 

5. 주흘관을 통과하여 뒤돌아본 모습.

 

6. 산책로는 드넓은 흙길이라 맨발로 걸어도 좋다고 한다.

 

7. 산에는 낙엽송이 아직 노랗게 물들어 있다.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는 숲의 한적함이 느껴진다.

 

8. 조곡폭포. 산 위에서 산책길 바로 옆으로 떨어진다.

 

9. 제2관문인 조곡관 주위엔 시원스런 송림이 펼쳐진다.

 

10. 조곡관 옆의 단풍나무가 아직까지 가을의 정취를 전해주고 있다.

 

11. 송림 사이로 흐르는 흙길은 사색하며 걷기에도, 대화하며 걷기에도 좋다.

 

12. 단풍이 절정일 때의 화려함을 내려놓고 조용히 겨울을 준비하는 계곡이 차분해 보인다.

 

13. 낙동강 발원지 부근의 정자는 지붕에 서설을 이고 있다. 주변의 자작나무 숲도 정갈하다.

 

14. 제3관문인 조령관에 서면 조령산이 한눈에 보인다. 간밤에 눈이 내린 것 같다.

 

15.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조령관의 돌담이 멋스럽다.

 

16. 조령관을 통과하여 뒤돌아본 모습. 선비들은 과거급제를 다짐하며 성문을 돌아봤을 것이다.

 

17. 조령관의 옆모습. 한적함이 곁들여진 탓인지 단아한 모습이 돋보인다.

 

18. 조령관 옆의 소나무. 조령산에서 내려오면 만나게될 자리이다.

 

19. 왕복 13 킬로미터의 산책로는 누구에게나 가장 걷기 좋은 길일 게다. 

 

20. 조령관에서 아내가 찍어준 컷. 균형잡힌 인생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