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국수역-청계산-농다치고개-소구니산-유명산-배너미고개 (2012년 11월 3일)

빌레이 2012. 11. 4. 07:41

가을 햇살을 받으며 흙으로 된 산길을 오래 걷고 싶다. 알프스 트레킹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차오른 생각이다. 봄에 걸었던 한강기맥 길이 떠오른다. 농다치고개에서 양수역에 이르는 산길을 하루 종일 걸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걸어보기로 한다. 아침 일찍 산에 들고 싶어 자동차로 국수역까지 간다. 국수역 주차장에 차를 내려놓고 일곱 시 정각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들판엔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초겨울 날씨처럼 쌀쌀하다. 한기를 다스리기 위해 부지런히 걷는다.

 

형제봉에서 보는 운해가 장관이다.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풍성하게 부풀어 오른 구름이 산 아래에 깔렸다. 기압이 높다는 뜻이니 날씨는 청명할 것이다. 형제봉에 설치된 넓은 데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용문산 주릉 위로 찬란히 떠오른는 아침 햇살과 발 아래의 구름바다를 온몸으로 느끼며 산에서 마시는 원두커피의 맛은 세상에서 최고다. 청계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예전보다 길게 느껴진다. 그늘진 곳 없이 따스한 햇볕을 온전히 받고 있는 청계산 정상은 거칠 것 없는 조망을 선물한다. 운해가 여전히 아름답다.

 

농다치고개 방향으로 길을 잡아 한강기맥 루트를 따른다. 산마루가 연결된 기맥길이 또렷히 보인다. 중미산이 오똑하고 유명산 너머 용문산 정상의 군부대까지 선명하다. 말고개, 말머리봉, 옥산을 거쳐 농다치고개에 이르니 오후 한 시가 넘었다. 청계산에서 말머리봉까지는 사람의 흔적이 별로 없는 낙엽 쌓인 길이다. 생각보다 길이 미끄럽다. 낙엽을 밟아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소음처럼 들린다. 다행히 말머리봉 이후부터는 사람들이 밟은 흔적이 많아 상대적으로 편안한 흙길 특유의 걷는 즐거움이 되살아난다. 러셀 안 된 눈길을 걷다가 다져진 눈길을 만난 것처럼 편안하다. 중간에 한 번 길을 잘 못 들어 허탈한 마음에 하산할 뻔 했다. 하지만 농다치고개에 도착하니 피곤함보다는 새로운 길을 걷고 싶은 생각이 더 강하게 나를 이끈다.

 

곧바로 차도를 넘어 소구니산 방향의 오솔길을 올라챈다. 비교적 높낮이가 적은 능선길을 걸어오다 갑자기 높은 경사도의 산길을 만나니 꽤나 힘들다. 머리 위로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이 잠자리떼처럼 하늘을 수놓고 있다. 힘겨운 된비알을 올라서서 선어치고개에서 오는 길과 합류하는 능선길을 따라 소구니산 정상에 도착한다.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억새평원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환하게 반짝이는 유명산 정상부의 풍광은 충분히 이국적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오솔길을 걷다가 억새밭을 지나니 갑자기 넓은 임도가 나온다. 비포장길이지만 유명산 정상까지 자동차가 오를 수 있을만큼 도로가 잘 되어 있다.

 

여느 산 같지 않게 평탄한 유명산 정상에서 옛날을 회상한다. 이십여 년 전, 지금보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간강사 시절에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달래고 힘을 얻기 위해 자주 찾던 유명산이다. 유명산 등산로 입구가 아닌 다른 길로 다시 찾은 유명산은 파란 가을 하늘만큼이나 활기 넘치고 풍요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 쉴새없이 임도를 오가는 자동차들은 우리 나라의 풍요로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제 활공장을 거쳐 배너미고개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 한강기맥길을 계속 간다.

 

비포장길을 오가는 자동차들과 사륜오토바이들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평탄하게 내려오는 임도는 하산길로 제격이다. 예전에 차로 와본적이 있는 배너미고개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하고, 설매재휴양림이 있는 양평시내 방향의 차로로 내려간다. 열 시간 가까이를 걸어서 온 거리가 이십 킬로미터를 훌쩍 넘겼다. 택시를 불러타고 양평역으로 향한다. 양평역에서 국수역으로 향하는 중앙선 전철 속에서 창문 너머로 지는 석양을 바라본다. 오랜만에 두 다리 뻐근한 트레킹을 즐겼다는 만족감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차오른다. 가을 산행을 하루 종일 제대로 만끽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1. 패러글라이딩 하기에 바람이 좋은 탓인지 유명산 활공장은 분주하다. 저 멀리 백운봉이 오똑하다.

 

2. 이른 아침 산에서 마시는 모닝커피 한 잔. 원두커피의 그윽한 향기가 좋다.

 

3. 형제봉 데크에서 바라본 남한강 위의 운해. 폰카의 아쉬움이 밀려온다.

 

4. 청계산 정상에 오를 때까지 운해는 계속된다.

 

5. 새싹 돋아나던 봄에 올랐던 청계산, 낙엽 쌓인 가을에 다시 왔다. 세월 참 빠르다.

 

6.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낙엽이 쌓인 한강기맥길.

 

7. 청계산에서 말머리봉까지의 한강기맥길은 사람의 흔적도 희미하고 낙엽이 많이 쌓여 미끄럽다.

 

8. 농다치고개에 도착하여 표지판을 확인하고, 곧바로 반대편 비탈길을 오른다.

 

9. 농다치고개에서 올라오는 길과 선어치고개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 소구니산에 이른다. 선어치고개는 중미산으로 이어진다.

 

10. 평소 마음 속에 있었지만 처음으로 올라와본 소구니산. 

 

11. 소구니산 정상에서 건너다본 유명산 정상부의 억새평원.

 

12. 소구니산에서 이어진 오솔길은 억새밭을 지나 임도를 만난다.

 

13. 유명산의 억새는 가을의 정취를 풍성히 전해준다.

 

14. 임도변에 설치되어 있는 벤치에 앉아 맞은편 용문산 주릉을 조망하며 차 한 잔을 나눠마시니 좋다.

 

15. 용문산 정상의 군부대에서 백운봉에 이르는 용문산 주릉 전체가 선명히 보인다.

 

16.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은 사람들로 붐빈다. 레저업체의 차량들은 산 아래로부터 부지런히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17. 바람부는 억새평원 위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패러글라이더. 그 자유로운 몸짓이 부럽다. 

 

18. 억새평원을 내려와 돌아다본 유명산 정상부.

 

19. 배너미고개까지 한 시간 정도는 더 걸어야 한다.

 

20. 이제 저 굽이만 돌아나가면 배너미고개이다.

 

21. 배너미고개에 설치된 한강기맥 안내판. 다음엔 용문산 너머까지 이어서 타볼 수 있을 것이다.

 

22. 억새밭에서 기념사진 한 컷. 가슴 뿌듯한 트레킹을 즐겼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