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우영의 해학

빌레이 2009. 5. 28. 10:12

올 여름 나의 생활은 그리 녹녹치 않다.

여러가지 주변 상황이 순탄하게만 돌아가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수락산 등산 중 발목을 접질린 것이 생활에 많은 장애를 주고 있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부기가 완전히 잦아든 건 아니다.

 

몸이 아프면 다른 일들도 의욕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학자들에게 천형처럼 따라 다니는 연구에 대한 부담감은 나를 힘들게 한다.

연구가 잘 될 때에는 몸도 좋고 마음도 편해진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현실이 지지부진하고 무미 건조할 때 나는 책을 읽는다.

발목을 치료하는 동안엔 고우영 선생의 <수호지> 20권을 읽었다.

여름 휴가를 대신한다는 의미로 거금 10만원을 지출하고 만화책 20권을 산 것이다.

그 수호지를 읽는 동안 또 한번 고우영씨의 독특한 세계에 빠져들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만화책은 고우영의 <삼국지>, <초한지>, <수호지>,

허영만의 <식객>, 방학기의 <다모>,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등이다.

원래 만화책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독특한 자기만의 시각과 세계를

그려나가는 그들의 정신세계가 존경스러운 몇몇 작가들을 흠모한다.

 

고우영은 우리 만화사에 우뚝선 거대한 산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동서양을 넘나드는 지식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단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감각은 최고 수준이다.

중국의 고전을 고우영씨만큼 통찰력 있게 그려낸 이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이렇게 위대한 그가 작고하여 <수호지>를 완간하지 못했다는 것이 무척 아쉽다.

미완성인 <수호지>이지만 그의 최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어서 소중한 면이 있다.

고우영만이 구사할 수 있는 유머와 해학, 수준 높은 에로티시즘의 세계에

한번쯤 빠져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