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은 자전거 매니아이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노는 곳은 주로 남한산성 주변이었다.
그의 소설 <남한산성>은 그가 놀던 곳을 주 무대로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김훈 자신의 얘기처럼 보인다.
묘사가 자연스럽고 정갈하며, 다분히 시적이다.
<칼의 노래>에서 김훈은 선조와 이순신의 갈등을 긴장감 있게 펼쳐나갔다.
역사 소설도 이렇게 간결하고 시적일 수 있다는 것을 그 책에서 처음 느꼈다.
이번에 나온 <남한산성>도 <칼의 노래> 못지 않은 수작이다.
인조 임금과 영의정 김류, 이조판서 최명길, 예조판서 김상헌 사이에 흐르는
갈등과 생각의 차이를 치밀한 구성으로 엮어냈다.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과 죽음으로 맞서자는 김상헌의 충정이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눈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문제의 발생 원인만을 따지는 대신들의 한심함을 엿볼 수 있다.
전쟁의 총수이면서 모든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영의정 김류의 비겁함은
오늘날의 정치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주 사소한 일까지 임금에게 결정을 미루는 김류의 치졸함은 독자를 슬프게 한다.
김훈에 대한 신문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김훈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는 1500만원짜리다.
그런데 최근 그의 친구가 4000만원짜리 자전거를 타고 와서 자랑하더란다.
그걸 한 번 타보니 매우 좋더란다. 그 자전거의 소재를 만든 NASA를 존경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 써서 돈 벌면 자기도 4000만원 짜리 살 거라고 했다.
나는 그의 이런 당당함과 솔직함이 좋다.
<남한산성> 때문에 그는 조만간 4000만원짜리 자전거를 타고 놀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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