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통의 의미

빌레이 2009. 5. 28. 10:09

내게 올 유월은 잔인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영영 작별했다.

보고 싶은 친구는 미국에 있다. 마음 통하는 선배 교수는 이번 주에 미국으로 떠났다.

심적으로 많이 외롭다. 그러던 차에 몸까지 아프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지난 주까지 성적 처리를 마무리했다. 진정한 방학이 이번 주에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몇년째 방학 동안의 휴식은 없다. 학기 중 강의 때문에 밀린 연구가 산적해 있다.

프로젝트를 훌륭히 수행해 내려면 방학 때 더욱 열심을 내야 한다.

더구나 작년부터는 중고등학교 수학교사들 연수에 불려가서 강의를 해야 한다.

이래 저래 올 여름방학도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시간은 없는 셈이다.

 

내심 금주를 휴가 기간으로 정했다.

내 손이 필요한 집안 일도 좀 하고, 나주 집에도 다녀 오고, 소백산과 월악산에도 다녀올 생각이었다.

이러한 나의 계획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화요일에 정신이의 도움으로 카메라와 컴퓨터를 샀다.

집에 와서 아들 놈의 컴퓨터 업그레이드하고, 내 방 컴퓨터 설치하느라 자정까지 용을 좀 썼다.

이 때부터 몸에 좀 무리를 한 것 같다. 

다음 날 소백산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처제내외가 하는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처제 내외와 점심을 일식집에서 간단히 먹었는데 이 것이 탈이 나버렸다.

나와 동서가 먹은 것만 이상이 있었던지 두 사람 모두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나는 밤새 뒤척이다 참지 못하고 근처에서 제일 가까운 병원 응급실 침대에 누운 신세가 되었다.

근 삼일 동안을 집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지내다 보니 좀 살만했다.

내가 아팠던 삼일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산에만 열심히 다니면 아프지 않을줄 알았다. 이런 생각도 교만한 것이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처럼 나는 원래 쉴만한 위인은 안 된다는 생각도 해봤다.

읽고 있는 책의 저자인 헤르만 불을 생각하면 한 없이 부끄럽다.

별 위대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빈둥대고 싶었던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겸손(humility)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성(humanity)를 회복하는 것이 겸손함이다. 그러고 보니 영어 단어도 닮았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싫어하신다고 한다.

겸손의 대척점에 교만이 있다. 교만함을 깨주기 위해서 인간에겐 고통이 필요한 것 같다.

나의 계획대로 된 것이 거의 없는 유월이 지나간다.

나는 내가 겪은 고통과 아픔 속에서 나의 교만함을 아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라는 성경 구절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본다.

 

나의 애송 시 김남조 시인의 '밤 기도'란 시를 옮겨본다.

 

 

밤 기도

 

하루의 짜여진 일들

차례로 악수해 보내고

밤 이슥히 먼 데서 돌아오는

내 영혼과 나만의

기도 시간

 

"주님" 단지 이 한 마디에

천지도 아득한 눈물

 

날마다의 끝 순서에

이 눈물 예비하옵느니

남은 세월 모든 날도

나는 이렇게만 살아지이다

깊은 밤 끝 순서에

눈물 한 주름을

주님께 바치며 살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