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생각할 것이 많은 영화가 보고싶어진다. 얼마 전부터 영화 <신과 인간>이 눈에 들어온다. 수도사들의 생활을 보여준 영화 <위대한 침묵>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던 터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에 보고싶어진 것이다. 아내와 둘이서 저녁 시간에 서울극장에 갔다. 대학 시절 자주 영화보러 다니던 피카디리, 단성사, 서울극장이 있는 종로 3가의 거리 풍경은 별로 변한 게 없다. 피카디리는 롯데시네마로 넘어가고, 단성사는 부도로 개관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서울극장이 옛이름 그대로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금요일 저녁 5시 40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기위해 바삐 서두른 보람이 있어 거의 정시에 극장에 도착한다. 극장 안은 한산하다. 관객이 우리를 포함해 열 명 정도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인기 없는 영화라는 생각에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보기로 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영화는 시종일관 내 눈을 사로잡는다. 내가 영화 속의 신부님들과 같이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사랑이 부족해서 메말라버린 것 같은 내 마음 속에 잔잔하게 젖어드는 느낌이 있는 이 영화가 좋다.
영화 <신과 인간>은 고립된 수도원 생활을 그린 <위대한 침묵>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다. <신과 인간>은 이슬람교도들이 대부분인 알제리의 산골 마을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1996년에 발생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고 한다. 수도원의 신부들은 의료봉사를 하면서 종교가 다른 마을 사람들과 교류한다. 아마도 카톨릭 방식의 선교 활동일 것이다. 신부들과 마을 사람들은 평화롭게 잘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평화로움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와 부패한 정부군의 무력이 수도원까지 밀려오면서 서서히 깨어지게 된다.
목숨을 위협받는 신부들은 고국인 프랑스나 좀 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한다. 여덟 명의 신부들은 서로 토론하고 고뇌하면서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한다. 처음엔 절반 정도의 신부들이 목숨이 위태로운 현실을 떠나고자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은 자신들이 떠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죽음이 눈 앞에 있을 때 인간은 자연스레 그것을 거부하고자 하기 때문에 죽음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는 내용의 대사가 생각난다.
정부군의 보호를 거부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살해 위협을 견디면서도 부상당한 그들을 치료해주는 신부들의 태도는 의연하다. 부패한 정부군과 테러집단 사이에 놓여 있는 마을 사람들은 육이오 당시 국군과 인민군 사이에서 위태롭게 오갈 수 밖에 없었던 힘없는 민중들의 삶을 연상시킨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손에 일곱 명의 신부들이 살해당하는 결말은 슬프다. 영화는 순교의 실체적 진실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목숨보다 귀한 신념을 지키는 것의 숭고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나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영화가 끝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종로3가 뒷골목으로 향한다. 식당들이 즐비한 좁은 골목길은 사람들로 붐빈다. 굴보쌈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곳도 많다. 우리 부부는 자리가 남아 있는 호남집에서 순대국밥과 소머리국밥을 먹는다. 왁자지껄 활기 넘치는 식당 분위기가 괜찮다. 순대국에서 대학시절 먹던 맛이 나니 아련한 추억마저 떠오른다. 우리네 삶이란 이런 소소함 속에 깃든 작은 행복을 동력으로 헤쳐나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든다. 밖으로 나오니 눈발이 날린다. 아들 녀석의 대학입시 실패로 답답하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목숨을 두고 고뇌하는 신부님들의 모습과 아들의 대학입시 실패로 옹졸해진 내 마음이 대비되면서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좀 더 큰 사랑으로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을 품어줄 수 있는 의연함이 내게도 있다면 좋겠다. 많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일이다.
1. 영화는 선교와 순교자의 실체를 보여준다..
2. 신부들의 대표격인 크리스티앙 신부와 의사인 뤽 신부..
3. 수도원의 신부들은 자급자족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공존한다... 시장에 꿀을 팔러 나온 크리스티앙 신부..
4. 의사인 뤽 신부와 마을 처녀의 대화... "신부님 사랑하면 어찌 돼나요?"...
5.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빨치산처럼 밤중에 수도원에 쳐들어온다... 종교적 신념으로 의연히 대처하는 크리스티앙 신부..
6. 보호해주겠다는 정부군의 태도도 호의적이진 않다... 수도원에서 테러범들을 치료해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7. 불안과 공포로 흔들리던 신부들은 결국 수도원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한다..
8. 죽음에 대한 공포로 흔들리는 신부들에게 동료들의 진한 사랑은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9. 순교를 예감한 듯 신부들은 단체사진을 남긴다... 이들의 웃는 모습 속에 눈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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