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릭 리지웨이의 <그들은 왜 히말라야로 갔는가>를 읽고...

빌레이 2010. 1. 17. 20:31

이 책을 사게 된 이유는 순전히 옮긴이 선우중옥 때문이다.

<얄개바위>를 지은 주영이 정신적 지주로 여기고 있다는 이가 바로 선우중옥이다.

선우중옥은 우리나라 암벽등반의 선구자이다. 인수봉과 선인봉엔 그의 족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런 선우중옥이 번역한 책이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저자인 릭 리지웨이와 선우중옥은 매우 가까운 친구 사이다.

등산장비 명품 브랜드인 파타고니아 창업자인 이본 취나드와 선우중옥이 원래 친구였다.

취나드가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선우중옥과 함께 인수봉을 초등했다. 

지금 그 암벽 코스의 이름이 취나드길이다. 선우중옥의 이름이 빠진 것을 주영은 아쉬워했다.

취나드와 리지웨이가 절친한 친구이고 선우중옥도 자연스럽게 이들과 친구가 된다.

현재 미국에서 이들 셋은 이웃처럼 가까이 살면서 여전히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책 내용은 저자 일행이 티벳의 민야콘가 산을 오르다 눈사태로 참변을 만나는 것에서 발단된다.

리지웨이, 취나드, 조나단 등의 친구들이 눈사태를 만나고 이들 중 조나단이 죽는다. 이십대의 젊은 나이였다.

죽은 조나단에게는 아시아라는 이름의 어린 딸이 있었다. 저자인 리지웨이는 아시아의 아버지처럼 그녀를 돌봐왔다.

이십년이 지난 후 리지웨이와 아시아가 조나단의 무덤을 다시 찾아간다는 얘기가 책의 줄거리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주에 읽었던 심산이 쓴 <엄홍길의 약속>이 떠올랐다.

산 정상을 오르는 것보다 과정 자체에 큰 의미를 둔다는 의미에서 두 책은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리지웨이의 책이 한 편의 장엄한 다큐멘터리 같다면, 심산의 책은 드라마에 가깝다.

사람마다 책을 읽고 느끼는 감흥은 다르다. 내게는 리지웨이의 책이 여러 면에서 우수해 보인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영국 비비씨의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우리나라 방송의 다큐를 보면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인정하기 싫지만 리지웨이의 책과 심산의 책이 그런 면에서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선우중옥의 번역은 투박하다. 심산의 미문에 비하면 한글의 아름다움은 배제된 것 같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Below Another Sky: A mountain adventure in search of a lost father>이다.

영어 원문을 구해서 읽고 싶을 정도로 책 내용은 훌륭하다.

인간의 흔적이 없는 원시 자연의 느낌과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이 책에는 있다.

진정한 모험이 무엇이고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모험가들의 얘기도 흥미진진하다.

노스페이스의 창업자 딕,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저자 릭이 대단한 모험을 같이하는 절친들이란 사실도 이채롭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에 드는 아포리즘들이 많았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의 근본...

자기가 선택한 좌우명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잘 보이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이러한 것을 라틴어로 '에쎄 쾀 비데리(Esse Quam Videri)'라고 한단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자기 성실과 정직... 앞으로 내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다.

에쎄 쾀 비데리... 에쎄 쾀 비데리... 주문을 외우듯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