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버들치의 일상>에서 '버들치'는 다음(Daum)과 네이버(Naver)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나의 닉네임이다. 이 명칭을 사용하게 된 동기를 밝히려면 내가 대전에서 거주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의 첫 정규직 직장이었던 한 국책연구소가 대덕연구단지 내에 자리한 까닭에 7년 남짓을 대전의 유성구 주민으로 살았다. 돌이켜 보면 당시는 격동의 시기였다. 취직 후에 곧바로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고, 20세기에서 21세기로, 1천년대에서 2천년대로 넘어가는 시대적 전환기였다. 젊음의 열정을 불태워 불철주야 연구업무에 매진하던 그때 우리 연구원들의 목표는 "국부창출"이었다. 옆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았지만, 아내와 함께 오손도손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 또한 이 때였다.
당시에 유년기를 보내고 있던 우리집 아이들과 함께 주말 나들이로 가끔 찾던 곳이 바로 수통골 계곡이었다. 어느날 아들 녀석이 계곡에서 놀다가 용케도 손으로 물고기 한마리를 잡게 되었다. 그 물고기 종류가 바로 버들치였다. 조심스레 집으로 가져와 어항에서 길렀는데 다른 야생 물고기와는 달리 버들치의 평균 수명인 3년 이상을 생존하면서 우리 가족의 애완동물 노릇을 톡톡히 했었다. 그 후로 인터넷이 보편화 되고 웹 상에서 사용자 등록을 할 때 정하는 아이디로 문득 이 버들치가 떠올라 별 고민 없이 나의 닉네임은 '버들치'가 되었다. 한마디로 <버들치의 일상>에서 '버들치'는 바로 수통골에서 우리집으로 데려와 키우던 그 버들치의 영혼이 깃든 닉네임인 것이다.
대전에서 서울로 직장을 옮겨 이사한 이후로 수통골에 다시 가볼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대둔산에서 1박 2일 동안 암벽등반을 즐기겠다는 계획으로 악우들과 함께 새벽에 서울을 탈출했으나, 오후에나 내릴 거라는 비가 예상보다 일찍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전 월드컵경기장 내의 클라이밍짐에서 운동하고, 예약해 둔 대둔산 숙소로 넘어가자는 플랜B를 가동하기로 결정했다. 암장 개장 시간 전까지는 월드컵경기장에서 가까운 수통골을 산책하기로 한 것이다. 다시 찾은 수통골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말끔히 단장되어 있었다. "국부창출"의 효과를 조금이나마 실감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계룡산 국립공원에 편입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진 신록의 숲속 산책로가 더없이 정겨웠다. 당시에 우리 가족이 버들치를 처음 만났던 곳이 어디쯤인지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맑은 계곡물에서 노니는 수 많은 버들치들이 새삼 반가웠다. 가랑비가 만들어낸 수면 위의 동심원들을 바라보면서 20여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아름다운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리움에 젖어보는 감회가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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