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설악산 유선대 '이륙공천' - 2022년 9월 24일(토)

빌레이 2022. 9. 26. 09:48

다음 주말부터는 개천절과 한글날이 포함된 3일 동안의 연휴가 2주 연속 찾아온다. 단풍철과 겹친 그 시기엔 설악산 일대가 많이 혼잡할 듯하여 금주에 등반을 가기로 결정한다. 새벽 4시 반에 서울을 출발하여 서울양양고속도로의 홍천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간다. 동 트기 전의 새벽 공기가 차갑다. 올가을 들어 처음으로 한기가 느껴진다. 바깥 온도를 확인해 보니 영상 8도이다. 짐을 꾸릴 때 넣을까 말까 망설였던 폴라플리스 보온 자켓을 챙겨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설악동 주차장에 도착하여 유선대를 향해 어프로치를 시작할 무렵엔 해가 떠올라 서서히 기온이 상승한다. 신흥사에서 비선대까지 완만하게 이어지는 3킬로미터의 등로를 산책하듯 여유롭게 걷는다. 비선대에서 금강굴을 거쳐 마등령으로 향하는 가파른 돌계단은 일부러 아주 천천히 오른다. 숨을 고르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고 오랜만에 대하는 장군봉의 우람한 절벽과 천불동 계곡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는 시간까지 소중하게 느껴진다. 설악의 품 속에 안겨 있는 동안은 신선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모든 순간이 그저 즐겁고 행복할 뿐이다.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일반 등로에서 벗어나 유선대의 '그리움 둘' 루트 초입을 지나고, 암벽 언저리를 돌아나가서 다시 올라간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쉽게 '이륙공천' 루트의 출발점을 발견한다. 처음으로 등반하게 되는 설악의 바윗길은 초입을 찾아내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삐걱거리는 허리와 무릎 상태를 감안하여 일부러 자주 쉬면서 여유롭게 걸었던 까닭에 설악동주차장에서 이 등반 출발지까지 이르는 데에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유선대는 10년 전 무렵에 '그리움 둘' 루트로만 두 차례 올랐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오늘 오를 '이륙공천' 루트는 크랙 등반이 주를 이루는 코스이다. 최고 난이도 5.10d의 만만치 않은 바윗길을 온사이트 선등으로 올라보는 내게는 다소 도전적인 등반이었으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시종일관 재미 있게 오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크랙을 따라 이어지는 자연스런 등반선과 적당히 어려워서 등반에 집중하게 만드는 구간들이 많아서 성취감 높은 등반을 즐길 수 있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햇살은 따사로웠으나 유선대 암벽엔 간헐적으로 세찬 바람이 불어와 확보점에 붙어 있을 때는 체온 유지에 신경써야 했다. 

 

▲ 가을철 성수기답게 설악동주차장은 이른 아침부터 만원이었다.
▲ 비선대로 향하는 등로 중간의 다리에서 바라 본 저항령의 하늘금이 선명했다.
▲ '이륙공천' 루트는 처음 가보는 바윗길이기에 가지고 있는 캠을 모조리 챙겨왔다.
▲ 비선대 계곡에서 올려다 본 장군봉과 적벽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 금강굴을 지나 장군봉 절벽 아래의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낙석의 위험 때문에 이 암벽은 현재 등반 금지 구역이다.
▲ 마등령으로 향하는 등로 중간에서 올려다 보니 유선대의 뾰족한 봉우리가 돋보였다.
▲ 유선대 바로 아래의 이 침봉이 좌측으로 보이면 일반 등로에서 벗어나야 한다.
▲ '그리움 둘' 루트 초입 아래의 절벽 사이를 통과하여 암벽 아래를 돌아서 올라가야 '이륙공천' 출발점이 나온다.
▲ '이륙공천' 루트 출발점 모습이다.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반겨주고 있었다.
▲ 우리 앞에 세 명으로 구성된 한 팀이 2피치 확보점에 모여 있는 게 보였다.
▲ 35미터 거리에 5.10a 난이도의 1피치 초반부는 사선으로 진행하는 크랙으로 시작된다. 밸런스에 신경써야 했지만 홀드는 양호한 편이었다. 크랙 위의 턱을 넘어서면 쉬운 슬랩이 이어진다.
▲ 난이도 5.10a에 25미터 거리의 2피치 초반부를 등반 중이다. 다양한 형태의 크랙을 따라 이어진 등반선이 많이 꺽이기 때문에 자일 유통을 위해서 알파인 퀵드로를 적절히 사용해야 했다.
▲ 손홀드가 좋은 크랙을 따라 이어지는 2피치 중간에서 언더크랙 구간으로 진입하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 2피치는 자일이 많이 꺽이기 때문에 알파인 퀵드로를 클립할 때 가능하면 길게 설치했다.
▲ 2피치부터는 천불동 계곡의 멋진 풍광이 제대로 펼쳐진다.
▲ 등번거리 30미터에 5.10a 난이도의 3피치를 출발하는 중이다.
▲ 3피치는 2피치보다 경사가 쎄고 좀 더 어렵게 느껴졌다. 등반선이 많이 꺽이기 때문에 이 구간에서도 알파인 퀵드로를 많이 사용했다.
▲ 3피치에서는 다양한 동작이 요구되는 구간이 많아서 크랙등반의 묘미를 한껏 누릴 수 있었다.
▲ 3피치 확보점에서 4피치를 오르고 있는 앞팀을 기다리는 동안 간간히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피하기 위해 암벽에 바짝 붙어 있어야 했다.
▲ '이륙공천' 루트 전체에서 크럭스 구간인 4피치는 벙어리성 직상크랙이 이어진다. 난이도 5.10d, 등반거리는 25미터이다.
▲ 앞팀의 후등자 분들이 어려워 하는 것을 지켜본 터라 자유등반은 아예 포기하고 캠을 적절히 사용해서 크게 힘쓰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 자유등반을 욕심 냈더라면 고생 좀 했을 4피치였지만, 블랙다이아몬드 3호 캠을 손째밍하는 가제트의 팔처럼 사용하여 오르는 재미도 괜찮았다.
▲ 5피치는 난이도 5.9에, 25미터 거리로 이전 피치들보다 쉽게 오를 수 있었다.
▲ '이륙공천' 5피치 확보점에서는 동해바다가 훤히 보인다. '그리움 둘' 루트로 올라온 등반자들도 보였다.
▲ '이륙공천' 루트는 5피치까지 사실상의 등반이 끝나고, 6피치와 7피치는 쉬운 릿지길로 '그리움 둘' 루트와 합류하여 정상에 닿는다.
▲ 6피치와 7피치는 연결해서 단 번에 정상까지 올랐다.
▲ 10여 년만에 올라온 유선대 정상에서 펼쳐지는 설악의 풍광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 울산바위와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정상 인증사진을 남겨본다.
▲ 쌍볼트 하강 고리가 두 개여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는데, 그걸 모르고 느긋하게 앞팀이 하강하기를 기다렸다.
▲ 정상에서 27미터를 자일로 하강하면 등반이 끝난다.
▲ 가파른 하산길은 설악의 절경을 다시금 음미하면서 아주 천천히 내려왔다.
▲ 하산길에 본 비선대 계곡의 청아한 옥색 물빛은 내 가슴 속에 또 하나의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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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륙공천' 루트 명칭은 개척에 소요된 합계 금액이 2,601,000 원이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