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의 설악산 날씨는 그야말로 변화무쌍 하다. 설악동 숙소에서 새벽 4시에 맞춰 놓은 알람 소리에 눈을 떠보니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새벽 5시부터 어프로치를 시작하려던 애초의 계획을 바꾸어 느긋하게 출발하기로 한다. 간단히 조식을 해결하고 짐을 꾸리는 사이에 비는 멈춰 있었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일단은 예정된 '4인의 우정길' 등반을 강행하기로 결정한다. 7시 즈음에 설악동매표소를 통과하여 비룡폭포를 지나 자욱한 안개 속의 토왕골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프로치를 하는 동안 바윗길이 말라 있기를 바라면서 등반 출발점에 도착한 시각은 8시 30분 무렵이다. 우리 앞에 이미 두 팀이 등반 중이어서 바위 상태는 괜찮을 거라는 기대감에 마음이 놓인다.
첫 피치 출발점 앞의 테라스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순간, 아주 잠시 동안 토왕성폭포와 선녀봉 일대 침봉들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시시각각 이리저리 몰려다니던 안개와 구름이 어느 한 순간 시야를 열어 주었으나 맛보기에 불과했다. 그 후로 오랫 동안 바윗길 주변은 짙은 운무에 둘러싸여 있었다. 풍경 감상은 포기하고 간간히 내리는 안개비 속에서나마 등반할 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였더라면 노적봉 남동벽 전체가 땡볕에 온전히 노출되어 한여름의 무더위를 견뎌내야 하는 더욱 힘겨운 등반이 됐을 거라는 생각에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오늘의 '4인의 우정길' 등반은 6년 만에 다시 결행한 것이다. 2016년 6월 당시엔 이 바윗길이 나에게 살짝 버거운 도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등반은 그리 좋지 않은 날씨 속에서도 긴장감 하나 없이 소풍처럼 즐겁게 모든 피치를 자유등반으로 만족스럽게 완등할 수 있었다. 오히려 조금 싱겁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동안 꾸준히 노력해 온 덕택으로 은연 중 클라이밍 실력이나 등반을 대하는 자세가 진일보 했음을 확인하는 듯하여 내심 흐뭇한 기분이었다. 다만, 앞팀으로 인해 정체 현상을 겪었던 6피치 앞에서 '5인의 우정길'로 오르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짙은 안개 속에 가시거리가 20 미터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초행의 바윗길에 선뜻 붙을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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